노준형 장관이 23일 브리핑을 통해 발표한 정통부의 도매규제 방침은 당초 예상대로 지배적사업자에 대한 재판매 의무화 부담은 지우고, 재판매 시장 진입에 따른 점유율은 제한하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내용만 보면 무선재판매 점유율 규제와 초고속 인가역무 재지정이라는 폭탄을 맞은 KT에 극도로 불리한 방향이다. 그러나 SK텔레콤에도 재판매 의무화와 자율적 재판매 부담을 지우면서 정통부는 지배적사업자에 대한 통제권을 절묘하게 유지했다는 분석이다. 무엇보다 여론의 집중 포화를 맞고 있는 통신 요금인하 해법까지 제시하면서 실리와 명분을 모두 챙긴쪽은 정통부라는 평가가 나왔다. 이후 고시에 담길 시장점유율 제한비율, 자율적인 재판매 수위 등 각론을 두고 사업자간 치열한 공방을 예고했다.
◇ KT ‘울고’ SK텔레콤 ‘덤덤’=이번 브리핑 내용을 두고 재판매 규제가 다소 완화되기를 내심 기대했던 KT는 허탈해하는 모습이다.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 초안에 담긴 부분의 기조가 그대로 유지됐으며 시장점유율상한 방침이 확정됐기 때문이다. 깜짝 반전은 없었던 셈이다. KT관계자는 “KT 무선 재판매가 시장에 어떤 해악을 끼치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며 “WCDMA와 같은 신규시장도 활성화되고, 소비자 요금인하 효과도 충분히 나타날 수 있는데도 이처럼 강한 규제를 하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반발했다. 더욱이 초고속 인가역무 해제가 무산된 부분에 대해서도 “정통부의 기조에 맞춰 광가입자망(FTTH) 등 투자를 열심히 했더니 오히려 지배력이 강화됐다는 평가로만 나타났다”며 해도 너무한다는 반응이다.
당장 발등의 불이 떨어진 KT에 비해 SK텔레콤은 상대적으로 느긋한 모습이다. 그러나 정통부가 지배적사업자의 재판매 진입제한보다는 재판매 의무화에 지나치게 무게중심을 둬 부담스럽다는 반응이다. SK텔레콤 관계자는 “우리가 승자인것처럼 비춰질지 모르지만 사실 재판매 의무화에 대한 부담은 SK텔레콤이 가장 크다”고 말했다. 정통부가 요금인하에 대한 여론부담을 재판매 의무화를 통한 시장경쟁쪽으로 유도했다는 반응이다.
◇시장점유율 제한비율 첨예한 쟁점=전체적인 기조가 확정된만큼 앞으로 업계 최대 관심사는 지배적사업자의 시장점유율 상한 비율이다. 정통부는 당초 사업법 개정안에 비율을 담으려 했으나 입장을 바꿔 고시에 반영키로 했다는 후문이다. 고시가 제정되는 내년 봄까지 상한 비율을 놓고 치열한 공방이 예상된다. 일각에서 재판매시장 점유율 상한이 10% 안팎이라는 얘기가 거론되자 KT와 SK텔레콤은 모두 반발했다. KT측은 △자본주의 시장에서 점유율 규제라는 논리가 성립조차 안되며 △상한규제 자체가 가입자 선택을 제한하고 △10%라는 수치 자체가 지나치게 낮게 설정됐다는 점 등을 들어 말도 안된다는 입장이다. SK텔레콤은 다른 이유로 반발했다. 10% 상한을 인정한다는 것은 현재 KT 무선재판매를 현재보다 2배 가까이 확대하도록 용인하겠다는 것인데 정통부의 지배적사업자 규제 취지와 전혀 맞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자율적 재판매 부담 고민=이날 브리핑에서 정통부는 재판매의 공을 일단 사업자에게 떠넘겼다. 노준형 장관은 “사업법 개정 이전이라도 사업자가 자율적으로 재판매에 나서주길 바란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사업자가 알아서 하면 의무화 부담을 안지겠지만 제대로 안하면 의무화 족쇄를 채우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다. 게다가 규제로드맵을 적용하는 속도가 점점 빨라질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SK텔레콤으로서는 큰 부담이다. SK텔레콤의 한 관계자는 “의무화 부담을 피해가기 위한 자율적인 재판매 수준이 시장의 10% 정도인데 시늉 정도로는 불가능한 규모”라며 “압박을 느끼고 있지만 기존 가입자를 내놔야하는 만큼 쉽게 결정할 사안은 아니다”고 말했다. SK텔레콤은 정통부의 사업법 조차도 아직 국회통과 등 여러단계를 거쳐야하기 때문에 올말께 최종 결과물을 놓고 검토여부를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조인혜기자@전자신문, ihcho@
◆장관 일문 일답
정통부는 전기통신역무(사업범위) 통합, 통신서비스 결합판매 허용 등을 담은 새 ‘통신규제 로드맵’에 따라 선발 통신사업자의 시장 지배력이 더욱 강화되는 것을 경계하기로 했다. 경쟁을 촉진해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고 소비자 후생을 증진하기 위한 로드맵이 오히려 정부의 시장 지배력 규제정책에 족쇄를 채울 수 있다는 판단에서 이다. 노준형 장관의 23일 ‘통신규제정책 로드맵’ 중간 점검 브리핑에서도 시장 쏠림 현상을 막기 위한 정책적 고민들이 곳곳에서 묻어났다. 다음은 노장관과 일문일답.
-시장 지배적 사업자의 재판매 시장점유율을 제한하려는 이유는.
△재판매 도입 활성화 과정에서 시장 지배적 사업자의 시장점유율을 제한하지 않으면 충분한 요금 인하 경쟁이 발생하지 않을 수 있다. 더욱 많은 플레이어들이 다양한 상품, 서비스, 마케팅을 전개함으로써 요금 인하 경쟁이 일어나야 하는데, 시장 지배적 사업자가 지나친 점유율을 가져가면 진입장벽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질적인 재판매 진입장벽이 존재할 경우 재판매를 의무적으로 제공할 사업자와 서비스를 지정하되 WCDMA 등에 대해서는 예외를 인정할 계획이라고 했는데.
△기본적으로 새 서비스가 어느 정도 시장 지배력을 발휘하는지를 판단하려면 상당한 기간 시장에서 성숙할 필요가 있다. 또 설비 투자 감가상각 등을 고려해 어느 정도의 투자유인체계가 필요하다고 보여 6년 동안 (신규 서비스의 재판매 제공 의무를 면제해주는) 기간을 두기로 했다.
-재판매가 활성화하지 않거나 요금 수준과 인하 추이에 문제가 있을 때에는 재판매 대가(도매 요율)를 규제하겠다고 했는데.
△시장 지배적 사업자에게 (통신서비스) 결합판매를 허용한 이유는 경쟁을 촉진해 요금을 내리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결합판매 초기에 구성된 결합판매 구성과 요금이 국민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어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도매 요율을 규제함에 따라 재판매 시장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
-통신규제정책 틀 개선을 위한 일정과 방향은.
△우선 재판매 의무화 관련 규정을 담은 전기통신사업법을 연내 정기 국회에 상정할 계획이다. 대통령 선거 일정을 감안해 11월 국회 통과를 희망하고 있다. 재판매 관련법 개정작업은 정책 당국자 의지를 분명히 하려는 것이다. 지난 3월 15일 ‘통신규제정책 로드맵’ 발표를 통해 약속한 전기통신역무(사업범위) 통합, 인터넷 전화 활성화 등 올해 추진할 것은 예정대로, 중장기 계획은 도입 시기를 앞당기는 등 강도를 높이고 있다. 무엇보다 경쟁 기반 확산이 가장 중요하다. 그동안 설비 기반 경쟁체계를 충분히 구축했기에 서비스 기반 경쟁을 도입하면, 생각보다 빨리 가계 통신비 부담이 완화될 것으로 본다. 이은용기자@전자신문, ey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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