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의 역사는 유구해서 기원전 이집트·로마시대에까지 거슬러 올라가니 가히 인간사회의 형성과 뿌리를 같이한다고 보겠다. 우리나라는 조선시대 패관문학서인 ‘대동야승’(大東野乘)에 도박에 관한 기록이 있다. 그만큼 도박은 늘 생활 가까이에 있었다.
사이버공간에도 도박이 침투했다. 보도에 의하면 하루 평균 6만명, 최대 40만명이 도박사이트에 접속하는 모양이다. 온라인 도박에 중독돼 개인적으로 재산을 탕진할 뿐만 아니라 가정파탄에 이르는 경우도 있다는 소식이 잦다. 당연히 단속 강화를 요청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정보통신부·검찰·경찰 등 감독관청은 인터넷 도박 근절을 발표하고 나섰다.
그런데 오프라인에서의 도박이 근절되지 않았는데 온라인 도박이 근절될 수 있을까. 오프라인에서 대부분의 나라는 정책적으로 법정 독점 혹은 허가 형태로 도박과 관련해서 현실과 이상 간 타협을 도모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주택복권에서부터 시작, 경마·로또·스포츠또또 등 공인된 도박이 증가해 이른바 ‘도박공화국’이라는 비판까지 제기된다.
오프라인 도박에 대한 각국의 정책은 몇 가지 나름의 배경이 있다. 첫째, 무엇보다 인간의 본성에 사행심이 존재하는 이상 무조건 금지하는 정책의 실효성이 없으며 오히려 도박이 비밀리에 행해지게 돼 그 부작용에 대한 대처가 더욱 곤란하게 된다. 둘째, 공인도박으로부터 거두는 세금은 사회복지비용과 같이 중요한 국책사업을 위한 재원이 될 수 있다.
온라인 도박은 미성년자에 대한 통제, 중독에 대한 통제가 상대적으로 더 어려운데다 가정과 직장에서까지 도박에 접근할 수 있다는 편재성의 문제가 있다. 따라서 오프라인 도박에 비해 더 엄격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점이 인정된다. 하지만 오프라인 도박을 근절하지 못하는 것처럼 사이버 도박도 근절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도박 근절은 도덕적 목표에 부합한다. 그러나 인간의 본성은 도덕적 목표를 의식함과 동시에 유흥·도전과 같은 다른 가치에 대한 미련도 버리지 못한다. 따라서 정책의 현실성을 높이는 것도 고려해볼 가치가 있겠다.
영국은 지난 2005년 도박법을 통해 온라인 도박을 엄격한 요건 아래 허용하는 규제체계를 도입하였다. 반면에 미국은 수년간의 논의에도 불구하고 입법에 성공하지 못하다가 보수적인 공화당이 의회의 다수를 차지한 2006년에야 ‘인터넷불법도박금지법’을 통과시켰다. 미국은 이 법으로 금융기관으로 하여금 도박자금 결제를 봉쇄하도록 했다. 그런데 이 법률은 이름이 시사하는 바와 같이 모든 인터넷 도박을 금지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불법인 도박이 온라인에서 행해지는 것은 금지되지만, 경마처럼 허용된 도박이 온라인에서 행해지는 것은 허용된다. 더구나 지난 의회 선거에서 다시 민주당이 다수를 차지하자 소위 ‘프랭크법안’처럼 2006년에 만든 법을 폐지하고 영국과 비슷하게 온라인 도박을 엄격한 요건 하에 허가하는 제도를 도입하자는 입법운동이 제기되고 있다.
이처럼 온라인 도박의 규제 양태는 각국의 정치·사회·문화적 환경에 영향을 받는다. 이미 50여개 국가에서는 사이버 도박이 국가 규제 하에 합법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2005년 기준으로 추산한 세계 사이버 도박 시장규모만도 50억달러에 이르고 향후 빠르게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나라에서 온라인 도박 허가를 추진하기에는 아직 정책 환경이 성숙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오프라인 공인 도박에 대한 광고·선전이 공공연하게 대중에 전달되는 것은 허용하면서 온라인 도박에 대해서는 근절을 외치는 것은 어쩐지 이율배반이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
이상과 현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조화시키는 사이버 공간 규제의 미학에 대한 요구가 멀지 않아 우리나라에서도 대두할 것이다. 네티즌에게 재미를 제공하면서도 중독에는 빠지지 않는 그리고 우리나라가 세계 온라인 도박 시장에서 일정한 몫을 확보해 공익적 목적에 활용하는 방안이 검토돼야 하겠다.
◆정찬모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연구위원 cmchung@kisd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