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페어플레이 정신과 IT산업 발전

국내 정보기술(IT) 경기 부진현상이 지속됨에 따라 그동안 간헐적으로 나타났던 과당경쟁과 출혈납품 풍조가 자칫 산업 전체로 번져갈까 관련업계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 통계에 따르면 2006년도에 경쟁사업자 배제, 사업활동 방해 등의 불공정행위로 접수된 사건은 1121건으로 2004년도의 500건에 비하면 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과거에는 IT 분야에서 저가출혈 경쟁이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문제로 통신장비 등 일부 품목에 한정됐다면, 최근에는 중소기업 간 경쟁으로 확산되고 품목도 보안 소프트웨어와 단말기 등 여러 분야로 확대되고 있는 추세다.

 최근 정부통합전산망 구축의 경우에서도 볼 수 있듯이, 정부가 중소기업 간 경쟁품목으로 지정한 IT제품 발주에서 중소기업들이 예가(적정가) 이하로 납품하겠다고 나섬으로써 당국자는 물론이고 경쟁에 참여한 업체들을 곤경에 빠뜨리는 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런 일이 지속되면 우리는 국내 1세대 보안업체로 방화벽 ‘수호신’을 개발했던 벤처기업 S사의 사례에서 보듯이, 저가덤핑 수주경쟁으로 인해 수익성이 악화되고 이로 인해 차세대 기술개발 등에 투자여력을 잃게 돼 기업의 핵심역량 약화로 인해 증시에서 퇴출되는 것과 비슷한 비극을 맞을 수도 있다.

 KOIVA를 중심으로 한 우리 IT중소업계는 지난 3년간 정보통신부의 협조와 7대 통신사업자의 참여하에 대중소기업 간 상생협력운동을 전개해 통신분야에서 불공정거래 행위가 급격히 줄어들고 협력 의식이 확산되는 성과를 거두었고 올해부터는 2∼3차 하도급업체로까지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또한 올 7월에는 국내 DVR 및 CCTV관련 23개 중소기업이 한자리에 모여 불공정 및 과당경쟁을 자제하자는 취지로 페어플레이 선언문을 채택하는 등 업계의 자정노력이 곳곳에서 보이고 있다. 그런데 민관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일부 업체는 여전히 나만 우선 살아보겠다고 가격덤핑을 무기로 내세우고 있어 그렇지 않아도 사업부진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소업계에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을 뿐만 아니라 IT산업의 기반마저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의 공공분야 수발주 시스템 내에서는 공공발주기관이 유사한 품질평가 결과라면 최저가를 제시한 업체를 선택할 수밖에 없고, 그것도 기업이 예가(적정가) 이하로 납품을 제시하면 일부러 가격을 높여 발주할 수도 없는 형편이다. 공공기관은 중소기업 육성보다 예산절감을 선호하는 감사기관의 감사를 받기 때문이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이러한 저가덤핑 수주경쟁이 발생하지 못하도록 일찍부터 아예 법으로 규정을 두어 이를 엄격히 규제하고 있다. ‘셔먼법’과 ‘클레이튼법’은 약탈적 가격정책으로 경쟁자를 시장에서 퇴출한 후 우월적 지위를 누리기 위한 기업들의 작전(作戰)을 뚜렷이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공정거래법상 덤핑입찰에 대한 규제조항이 전적으로 미흡한데다, 제23조 2항 ‘부당하게 경쟁자를 배제하는 행위’가 규정돼 있고, 공정거래위원회의 예규인 ‘불공정거래 심사지침’에서 덤핑입찰을 규제하고 있음에도 빠져나갈 수 있는 예외조항이 많아 이들 법규마저도 제대로 적용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우리 IT업계에서는 차제에 새로운 법규의 제정이나 기존 관계법령의 개정을 추진하고 업계 내부에서도 이러한 불건전 상거래행위가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해당업체에 대한 정보를 언론이나 관련단체를 통해 공개하는 방안을 강구해 나가야 한다. 정부도 덤핑입찰 사례를 조사해 관계기관장에 인사상 불이익을 주는 등 제도적 장치마련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시장이 제 기능을 해야 기업과 관련 업계가 발전한다. 시장이 제 기능을 하려면 가장 먼저 공정한 경쟁과 거래관행이 자리를 잡아야 한다. 우리의 IT 산업은 지금까지 온 길보다 앞으로 나가야 할 길이 더 많이 남아 있다. 우리가 가야 할 앞길의 걸림돌인 불공정 경쟁의 뿌리를 뽑는 일에 모두의 관심과 노력이 필요한 때다.

◆서승모 IT벤처기업연합회장 smseo@cnstec.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