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언론매체에서 동사무소마다 설치된 무인민원발급기에 지문을 복사한 종이를 갖다대자 기계가 작동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개인정보가 담긴 각종 민원서류가 모조 지문에 의해 발급될 수 있다는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단순히 문제점이 있다는 사실만 전달해 사회적 불안감만 조성한 면이 있는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문제가 된 무인민원발급기가 보급되기 시작한 2000년 당시에는 모조 지문을 방지할 수 있는 기술이 상용화되지 않았다. 특히 지문을 인식하는 장치는 크게 광학식과 반도체식으로 구분되는데, 초기 광학식은 인식률이 높고 내구성이 좋지만 모조 지문에 약하다는 단점이 있었다. 반도체식은 내구성이 약해 일반적으로 출입통제기나 도어락 등 일상에서는 광학식 지문인식기를 사용하고 있다. 이에 따라 광학식의 모조 지문에 대한 연구는 계속돼 왔으며, 2006년부터 대부분의 모조 지문을 막을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된 상태다.
행정자치부도 최근 모조 지문 방지기술이 탑재된 지문인식기로 전량 교체하는 계획을 세우고 있어 모조 지문에 의해 민원서류가 발급되는 등의 문제는 쉽게 해결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모조 지문에 대해 몇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다. 실제로 모조 지문을 사용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는 사실이다. 일단 타인의 모조 지문을 습득하는 것 자체도 어려운 일이다. 모조 지문을 제작하려면 그 사람의 손가락 본을 떠야 하기 때문이다. 또 모조 지문을 남이 보유하도록 하는 행위는 대리출석과 같이 본인의 이익이나 편리를 추구할 때는 간혹 이용될 수 있으나 범죄와 같이 자신의 이익에 반하는 일에 본인의 모조 지문을 사용하도록 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더욱이 무인민원발급기는 대부분 공공장소에 설치돼 있어 남이 보는 앞에서 모조 지문을 사용한다는 것도 쉽지 않다. 특히 무인민원발급기 앞에 CCTV를 설치한다면, 모조 지문을 사용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막을 수도 있다. 이런 이유들로 지금껏 모조 지문을 이용해 민원서류가 발급됐다는 사고소식을 접해보지 못했을 것이다. 실제로는 벌어지지 않았던 일인 것이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무인민원발급기에서 민원서류를 발급받을 때 주민등록증 뒤에 있는 지문과 실제 지문을 비교하는 것으로 본인 확인을 하게 되는데, 실제로 주민등록증을 복사하기만 해도 쉽게 모조 지문을 만들 수가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주민등록증 뒤에 지문이미지가 그대로 노출돼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이는 과거에 지문을 자동으로 식별할 수 있는 기술이 없었을 때, 주민등록증 소지자가 본인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게끔 본인의 지문과 주민등록증 지문을 육안으로 식별하기 위해서 주민등록증에 지문을 넣은 것이다. 따라서 지문이미지나 개인정보를 누구나 볼 수 있게 하는 현재의 주민등록증을 개선해 이러한 정보를 스마트카드 내에 보관해 더욱 안전하게 관리할 수 있는 전자주민증 보급을 서둘러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자주민증은 영국·태국·중국 등 여러 나라에서 추진되고 있고 전자여권과 함께 세계적인 추세에 있다. 전자주민증이나 전자여권이 시행되면 편리하게 사용하는 것은 물론이고 보안성이 뛰어나기 때문에 분실을 해도 본인정보를 남이 위·변조하거나 도용할 수 없어 신원 도용사고를 크게 줄일 수 있다.
사실 행자부에서 전자주민증사업을 추진하려는 계획이 있었지만 일부 시민단체의 반대로 제대로 진행되고 있지 못하고 있다. 전자주민증은 과거 주민등록증의 문제점을 크게 개선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일상생활에 필요한 여러 가지 부가 기능을 포함시켜 국민이 매우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에 조속히 도입돼야 마땅하다고 생각된다.
물론 전자여권이나 전자주민증 도입과 관련한 정책에 일부 시민단체가 주장하는 보안상의 여러 가지 문제점이나 사회적인 반론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이는 대부분 기술적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거나 시스템에 사소한 오해로 비롯된 점이 적지 않아 이에 대한 충분한 협의와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며, 서로의 노력으로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배영훈 <한국정보보호산업협회장·니트젠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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