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경제가 ‘넛 크래커’ 또는 ‘샌드위치’의 처지에 빠졌다는 걱정의 소리가 들린다. 또 경제성장 동력으로서 IT산업의 힘이 전과 같지 않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돌이켜보면 80년대 국산 디지털교환기(TDX)와 90년대 CDMA시스템의 개발 성공은 우리에게 첨단기술 개발의 자신감을 안겨 주었다. 휴대폰·반도체와 디스플레이의 선전은 세계에 ‘IT코리아’를 각인시켜 주었다. 아울러 정부가 차세대 성장동력 사업을 열심히 추진한 결과 와이브로나 지상파DMB와 같은 신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 시장에 내놓았다.
그동안 IT산업은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를 이끄는 핵심 역할을 톡톡히 해 왔다. GDP에 대한 IT산업의 비중을 보더라도 참여정부 기간 동안 매년 1% 이상 상승해 작년에 16.2%에 이르렀다. 지난 2002년 26.3%에 불과했던 경제성장 기여율도 40.0%를 차지해 우리 경제성장을 주도하고 있다.
그러나 상용화 기술개발에 주력한 나머지 원천기술 연구에는 다소 소홀한 면이 있었다. 휴대폰은 열심히 만들어 팔아도 원천기술을 갖고 있는 퀄컴이 더 큰 이익을 본다는 말은 그래서 나온다.
이제는 기술료의 과다지출 문제를 차치하고라도 우리 시장이 잠식당할 위기에 처해 있다. 중국을 비롯한 후발국가들이 원천기술이나 생산기술 도입을 통해 상용시스템을 개발해 맹렬한 기세로 세계 시장을 넘보고 있다. 원천기술의 확보 없이는 차별화도 어렵고 따라서 시장 지키기도 쉽지 않게 됐다.
중국의 최근 기술개발 노력은 우리를 더욱 긴장시키고 있다. 중국은 작년 한 해 3640억달러어치의 전자정보제품을 수출했는데 외자기업이 80% 이상 차지해 실제로 부가가치가 그리 높지 않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이 때문에 중국정부는 자주적 기술혁신(創新)을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조하고 있다. 방대한 시장을 무기로 선별적인 외자도입 정책을 펴면서 중국 내 연구개발(R&D)센터의 설치를 허가조건으로 내세우기도 한다. 중국 표준은 자체기술을 채택하려고 최대한 노력하며, 외국기술은 기술료 문제의 대폭 양보 없이는 선정되기가 점점 힘들게 됐다.
넛 크래커의 옥죄는 힘이 점점 커질 수밖에 없는 현실을 반영해 정부는 작년 말 국가 R&D사업 토털 로드맵(중장기발전전략)을 수립, 앞으로 원천기술 개발투자를 확대하기로 했다. 특히 정보전자 분야는 민간 역량이 성숙된만큼 상용개발에는 민간 참여의 확대를 유도하고, 국가 R&D자원은 원천기술 개발에 중점 투자해 나가기로 했다.
그렇다고 해서 바로 원천기술 개발이 증가할 수 있는 형편도 아니다. 와이브로와 지상파DMB의 개발 주역으로서 무선통신 강국을 선도하는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을 살펴보자. R&D과제의 선정·관리·평가가 단기성과 위주로 이루어지니 2∼3년 뒤 확실한 성과가 나오는 상용화 과제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고 애로를 토로한다. 세금을 내고 있는 국민도 당장 그 돈으로 무엇을 개발했는지 가시적 성과를 기다리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제2의 CDMA기술과 같은 원천기술 개발이 쉽지만은 않다.
풀뿌리 기초연구에 대한 관심도 높여야 한다. 소형과제더라도 더 많은 이공계 교수가 연구에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을 확대해 창의적 아이디어와 기술을 끌어모아야 한다.
지난 벤처 붐 때, 큰돈을 벌겠다고 너도나도 벤처기업에 투자했다. 사실 벤처기업이 성공할 확률은 10분의 1도 되지 않는데 풀뿌리 기초연구과제 열 개에서 창의적 아이디어를 한 개라도 건져내 상용화의 원천으로 쓸 수 있다면 벤처 투자보다 낫지 않은가.
원천기술 개발은 안정된 연구 분위기에서 중장기적으로 꾸준히 노력해야만 빛을 볼 수 있는만큼, 정부는 관련 제도 개선과 투자 확대를 위해 계속 노력할 것이다. 국민과 기업들도 우리 과학기술인들이 원천기술 연구에 매진할 수 있도록 애정과 인내를 갖고 지켜봐야 할 것이다.
차양신 <과학기술혁신본부 정보전자심의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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