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 정전

 어릴 때만 해도 자주 전기가 나갔다. 그래서 집 안 구석구석에는 언제나 새하얀 양초가 준비돼 있었다. 전기가 나가면 좀 답답하기는 하지만 그 나름대로 운치도 있다. 숙제를 안 해도 될 것 같은 묘한 안도감이 있고, 어른거리는 촛불에 그림자 놀이를 하는 것도 꽤나 재미있다. 온통 깜깜해진 세상에서 별은 또 어찌나 밝게 빛나는지. 엄마 무릎을 베고 누워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다가 일찍 잠들어버린 어린시절의 기억들….

 그런 정전의 추억들은 이제 없다. 요즘은 전기가 나가는 일도 거의 없지만 정전이 되면 운치는커녕 짜증만 앞선다. 냉장고 음식도 걱정되고, 컴퓨터를 못하는 것도 아쉽기만 하다. 오래간만에 찾아온 어둠을 즐기기보다는 뭘 할지 몰라 안절부절못한다. 그만큼 전기에 많이 의존하는 시대가 됐다.

 지난 2001년 1월 캘리포니아에서 대규모 정전사태가 발생했다. 샌프란시스코·새크라멘토·로스앤젤레스·실리콘밸리 전역이 혼란에 빠져들었다. 실리콘밸리에서는 첨단 기기들이 멈춰섰고 한 시간에 수천억원의 돈이 공중으로 날아갔다. 현금인출기와 신용카드 단말기가 정지됐고 짓무른 채소와 상한 우유가 넘쳐났다. 전력 민영화 등 원인을 둘러싼 미국 내 공방도 그만큼 치열했다. 이유야 어떻든 정전이 곧바로 막대한 경제적 손실과 생활적인 타격을 가져오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지난 3일 벌어진 삼성전자 기흥공장의 정전이 적지 않은 충격파를 던졌다. 신속한 복구에다 400억원 남짓의 피해로 그쳤다니 다행이지만 완벽주의를 자랑하는 최고의 기업 삼성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으니 모두들 꽤나 놀란 듯하다. 그렇지 않아도 각종 위기론이 퍼지고 있는 삼성에 또다시 이런 악재가 생겼다며 우려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이번 정전사태를 즐길 수는 없지만 교훈으로 삼을 수는 있다. 전력 과부하를 사전에 예방하고 비상전원시스템을 제대로 갖추는 일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비단 삼성뿐만 아니라 다른 기업들도 한번쯤 되돌아볼 때다. ‘살펴보고, 의심하고, 확인하는’ 정성만큼 위험도는 줄어든다. 또 한 가지.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는 것이다. 역경지수가 높은 기업은 실수를 언제나 자산으로 만든다.

  조인혜 차장·U미디어팀@전자신문, ihc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