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휴대폰 업체 노키아가 핵심부품인 통신칩 제조를 중단한다. 대신 노키아는 전문 칩업체의 통신칩을 사서 쓰기로 했다. 퀄컴은 공급업체에서 배제됐다.
9일 파이낸셜타임스·인터내셔널헤럴드트리뷴·CNN 등 주요 외신들은 노키아가 멀티미디어·소프트웨어 사업에 집중하기 위해 지금까지 자체 조달해 온 통신칩을 텍사스인스트루먼츠(TI)·브로드컴·인피니언테크놀로지스·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등 4개 칩업체로부터 구매하기로 했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앞으로 이들 업체는 노키아에 라이선스 비용을 지불하고 WCDMA와 HSDPA칩 원천 기술을 제공받게 돼 3G 시장에서 퀄컴 등과 치열한 경쟁을 펼칠 전망이다.
노키아는 4개 협력업체 중 TI를 통신칩 전반 주요 공급업체로 선정하고 브로드컴과는 GSM EDGE칩 부문 계약을, 인피니언과는 GSM칩 공급계약을 각각 맺기로 했다. 또 4분기 중 핀란드 본사와 영국 지사에 있던 직원 200명을 ST마이크로에 파견해 3G 이후 차세대 모뎀칩 기술을 전수할 예정이다.
노키아의 니클라스 사반더 부사장은 “(통신칩 아웃소싱 전략은) 갈수록 통신기술이 복잡해지는 환경에서 실용적인 결정”이라며 “우리는 핵심 통신칩세트와 멀티미디어 기술 개발에만 R&D 역량을 집중하고 나머지는 아웃소싱해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것”이라고 밝혔다.
조윤아기자@전자신문, forange@
◆뉴스의 눈
노키아가 통신칩을 아웃소싱하기로 한 것은 ‘차세대 모바일인터넷 사업 강화’와 ‘원가경쟁력 향상’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노린 전략의 일환이다.
노키아는 지난 6월 발표한 조직개편안에서 서비스&소프트웨어사업부를 신설해 모바일인터넷 사업을 강화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통신칩 아웃소싱 계획은 조직개편의 일환으로 통신칩 제조부문 등을 과감히 정리하고 모바일 플랫폼, 휴대이동방송(DVB-H) 등 신수종 사업에 주력하기 위한 방편으로 풀이된다. 소위 ‘잘 터지는 휴대폰’이 최고였던 시절은 지나고 누가 더 첨단 기능과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느냐가 차세대 이동통신 시장의 향배를 가르기 때문이다. 애플이나 구글의 이동통신 시장 진출도 노키아로서는 적지않은 위협이다.
또 모토로라나 삼성전자와 달리 상용칩을 구매하지 않고 자체 통신칩 개발을 고수해 온 노키아는 인도·중국 등 신흥시장이 원하는 저가폰을 생산하기 위해 칩 생산 경비를 최대한 줄이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는 자체 개발한 통신칩 기술을 노키아 폰에만 탑재했지만, 앞으로는 칩업체들에 라이선스를 판매해 부가수익도 누릴 수 있다.
TI·브로드컴 등 칩업체는 원천기술을 얻는 동시에 분기당 1억대 휴대폰을 판매하는 노키아를 최대 고객으로 확보하는 2중의 수혜를 입는 셈이다. 이와 반대로, 퀄컴은 브로드컴과의 특허 분쟁에서 패소한 데 이어 노키아가 벌인 잔치에도 초대받지 못함으로써 악재가 겹쳤다.
삼성전자는 WCDMA칩 공급업체가 늘어나면서 칩 가격이 내려가는 반사이익을 거둘 수 있지만, 동시에 휴대폰 업계 라이벌인 노키아의 저가폰 공세로 해외 시장에서 더욱 힘겨운 싸움을 벌이게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