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발전의 역사는 기술 발전의 역사라고도 한다. 인류가 다른 동물과 다른 점은 도구를 다룰 줄 알고 이를 사회 속에서 전달, 축적할 수 있다는 점이라고 한다. 유행·패션 등은 되풀이되기도 하지만 기술 발전은 한 방향으로 이뤄져 왔다. 넥타이의 폭이 넓어졌다가 좁아지기도 하고 머리가 길어졌다가 짧아지기도 하지만 한 번 불을 이용한 이후 지속적으로 이용돼 왔고 이를 이용하는 기술도 지속적으로 개발돼 왔다.
그러나 기술 발전의 속도가 모든 인류에게 같은 것은 아니다. 기술의 전달, 축적은 사회 속에서 이뤄지지 때문에 민족·부족·국가 등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으며 이러한 차이가 민족·부족·국가 발전 차이의 핵심적인 요소가 돼 왔다고 할 수 있다. 남아메리카의 찬란했던 잉카 제국이 총을 가진 소수의 스페인 무리에 일거에 무너져버린 것은 두 사회가 가졌던 기술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찬란한 문화를 가졌던 중국이 유럽 열강과의 전쟁에서 진 것은 총과 대포·군함 등의 군사기술의 차이 때문이었다. 현대에도 국력의 차이는 기본적으로 국가사회에 내재해 있는 기술의 차이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인류의 역사가 이러한 기술과 정보가 발전하는 방향으로 이뤄진 것만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기술과 정보가 발전하는 추세는 분명하지만 그 과정에서 이에 반대해 기술의 발전을 막거나 되돌리려는 시도 역시 많이 있었다. 러다이트 운동은 새로운 방적 기계의 도입을 막기 위해 일어난 운동이었다. 대동여지도는 지리 정보를 독점하고자 하는 조선 정부에 의해 불타고 제작자가 처형됐다. 활판인쇄술도 조선에서 가장 먼저 발명됐지만 정보를 통제하고자 하는 정부에 의해 억제됐다. 사실 모든 기술 발전은 이를 막거나 억제하려는 세력이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새로운 기술의 도입은 기존의 정치적·산업적 세력 관계에 영향을 미치고 이를 바꾸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새로운 기술의 도입이 궁극적으로는 막히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시적으로 막을 수는 있으나 도입하지 않은 집단은 경쟁력이 약해져 신기술을 가진 집단에 밀릴 수밖에 없게 돼 결국은 새로운 기술을 도입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러한 과정은 과거의 일만은 아니며 현재 우리의 주변에서도 다수 일어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일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시장에서는 시장메커니즘에 의해 적절히 조절될 수 있지만 정부 규제가 존재하는 분야는 자칫 국가 경쟁력에 바람직하지 않은 방향으로 규제가 이뤄질 수도 있다. 항공기가 승객 이동 서비스라고 버스와 똑같이 시속 100㎞의 속도규제를 했다면 우리나라 교통 시스템은 어떻게 됐을까. 핸드폰 단말기를 과거 백색전화처럼 통신단말기라 하여 통신업자만 공급할 수 있게 했다면 이동통신사업은 어떻게 됐을까. 철도사업을 과거 버스사업과 같이 지역별로 제한했다면 철도사업이 어떻게 됐을까. 정보통신분야는 기술 발전 속도가 빨라 잘못된 규제의 영향이 매우 클 수 있다. 전국적 전달이 이점인 위성방송에 인위적으로 지역을 구분하는 부담을 줘 위성방송 기술의 이점을 살리지 못하게 하고 있고 IPTV에도 이런 주장이 대두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이러한 새로운 기술의 도입을 막고자 하는 규제가 궁극적으로 성공하지는 못한다는 것이며 그 과정에서 국민이 결국 그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게 된다는 사실이다. 서울에서 부산가는 항공기가 고속버스와 똑같이 시속 100㎞ 이하로 비행해야 한다거나 5시간 이내로 도착해서는 안 된다는 식의 규제가 나오지 않게 되기를 바란다.
◆김원식/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TTA) 회장 wskim@tt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