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정도를 내다본 IT 패러다임의 본질은 무엇일까.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IT의 발전양상으로 볼 때 명쾌하게 단언하기란 다소 무리가 있겠지만 나는 지능화 공간 IT시대가 도래할 것으로 본다. 20세기에 들어와서 우리의 생활을 혁신시킨 대부분의 기술은 집중화, 분산화 그리고 네트워크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발전해왔다.
예를 들어 교통분야를 살펴보자. 철도라고 하는 집중관리적인 수송 시스템은 도로와 자동차 중심의 분산교통시스템으로 우리의 생활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그리고 다시 ITS와 같은 IT와 접목된 네트워크화 시스템으로 그 모습을 바꾸었다. 그렇다면 네트워크화 이후의 교통시스템은 어떤 모습일까. 아마도 각종 상황 정보를 활용하는 센서융합기술 등으로 탑승자의 생명을 지켜주는 첨단안전자동차이자 궁극적으로 자율운전이 가능한 지능화 공간 IT 차량으로 변모할 것이다. 이러한 양상은 컴퓨터의 세계에서는 더욱 확연해진다. 메인프레임이라는 집중관리적인 시스템에서 미니 컴퓨터와 워크스테이션으로 구성되는 분산적인 시스템으로 그리고 다시 인터넷을 만나 전 세계의 PC가 네트워크로 연결됐다.
미래의 IT는 현실세계 구석구석에 다양한 컴퓨팅 요소를 내장하면서 우리 삶의 공간을 ‘똑똑한 환경’으로 바꿔 놓을 것이다. 예컨대 지능을 가진 기술이 우리의 생활공간을 조용히 에워싸는 환경(ambient intelligence)이 미래 IT 패러다임이라고 할 수 있다. 지능화 IT 패러다임은 한마디로 ‘인지적 공간통신’의 세계이기도 하다. 지금까지의 IT는 느끼고 만져서 인지하는 일종의 지각기능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그러나 최근 IT의 발전으로 논리와 감성의 동물인 인간과 기술 간에 존재했던 장벽 사이의 미세한 간극을 점차 좁히고 있다.
센서칩을 탑재한 초소형 자율형 컴퓨터가 현실환경에 스며들어 키보드 입력과 같은 인간의 개입 없이 스스로 필요한 상황을 인식한다. 인간의 의지로 ‘연결하는 IT’가 아니라 언제나 ‘연결돼 있는 IT’로 그 본질이 달라진다. 공기처럼 둘러싸인 IT의 역할은 사용자에게 보다 쾌적하고 안전한 지능화 공간 서비스를 지원하는 것이다.
실제로 EU가 추진하고 있는 ‘엠비언트 인텔리전스 프로젝트’는 최적 지능공간으로서 제2의 생존환경을 구축하는 데 그 목적을 두고 있다. 여기에서는 일상생활 공간을 기술을 매개로 보다 쾌적하고 안전한 인간중심 공간으로 재창조하고자 한다. 공간을 구성하는 사물과 환경에 ID와 통신, 처리기능을 갖춘 스마트 디바이스를 배치한다. 그리고 이들 요소 간에 끊김 없는 상호작용으로 이용자는 기기나 기술을 의식하지 않고 원하는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한다. 이를 눈에 보이지 않은 IT라고 할 수 있겠다.
지난 10년간 우리나라는 첨단 유무선 초고속통신망 구축과 IP화를 추진해 IT서비스가 보다 다양화되고 단말은 편리하고 고기능화됐다. 그러나 속도와 기능기반의 시청각 IT 패러다임은 성숙단계에 들어섰다. 이미 선진 각국은 단순히 기존 IT의 연장이 아닌 새로운 개념과 가치를 창출하는 미래 네트워크 아키텍처 프로젝트를 잇달아 출범시키고 있다.
이는 현재의 인터넷이 갖는 과제와 한계를 근본적으로 극복함과 동시에 속도·품질·보안 등을 자유자재로 선택하는 서비스 이노베이션을 창출할 IT 패러다임 신시대의 주도권을 선점하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이제 IT는 인간과 사물·환경을 융합시키는 지능화 공간 신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21세기 지능기반강국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장기적 관점에서 BT나 NT와 같은 기술 간 융합은 물론이고 인문사회과학을 망라한 초영역적 연구개발과 인재양성이 시급한 시점이다.
◆최문기/ETRI 원장 mkchoi@etr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