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대학원을 졸업한 조카가 취업 문제로 상담을 청해 왔다. 시험을 봐서 두 곳에 합격했는데 어디를 가야 할지 고민이 된다는 것이었다. 한 곳은 상장회사로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알 수 있는 대기업이었고 다른 한 곳은 규모는 작지만 아는 선배가 일하고 있는 곳으로 회사의 분위기가 좋다는 것이었다. 두 번째 기업은 본인이 원하는 부서에서 일할 수 있지만 큰 기업은 어디로 배치받을지 알 수 없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인생 경험을 꽤나 한 입장에서 솔직히 대기업은 잘 알려진 회사라는 것을 제외하고는 조건이 좋지 않았는데 조카는 유명한 회사의 ‘이름값’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었다.
조카의 고민을 듣다가 벤처기업이 좋은 인재를 구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다시 한 번 느끼게 됐다. 대학을 졸업하고 기자 생활을 했던 10년간을 제외한 나머지는 ‘벤처기업’을 창업하고 운영해왔던 터라 늘 자금과 사람 고민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다.
연료가 없으면 차가 굴러 갈 수 없으니 자금의 중요성이야 말할 필요가 없겠지만 어떤 면에서는 자금 측면이 더 간단한 문제일 수 있었다. 자금은 어느 정도는 예측도 가능하고 숫자로 나타나는만큼 명확한 측면이 있지만 사람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좋은 인재인지에 대한 정의도 명확하지 않을 뿐더러 막상 좋은 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인재가 온다고 해도, 혹은 다른 회사에서 훌륭한 성과를 보였던 인재라고 하더라도 조직과의 융화나 그 사람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조직문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점에서 더 복잡한 문제로 다가왔다.
신생 기업에서는 개개인의 능력이 회사 전체의 성과를 좌우할 수 있기 때문에 능력 있는 인재가 필요하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객관적으로 좋은 조건의 소위 인재는 대기업을 선호한다. 아니 신생 기업에 오려고 하지 않는다. 그것이 딜레마다.
하지만 작은 회사에는 대기업에는 좀처럼 찾기 어려운 것이 있다. 회사 전체에 녹아 있는 활기와 ‘벤처 정신’이다. ‘하면 된다! 할 수 있다!’는 강력한 믿음이 종종 범재를 출중한 인재로 키워내는 마술 같은 힘을 발휘하곤 한다.
1996년 말에 설립한 첫 번째 회사는 여의도 20평 오피스텔에서 시작해서 이듬해 여의도의 한 빌딩 사무실을 구할 정도로 식구가 불어났다. 회사가 컸다고는 해도 아직 번듯한 회의실 하나 갖추지 못해 사람을 뽑을 때면 근처 중국집 룸을 빌려서 면접을 봤다.
그렇게 조그만 회사였으니 서류상으로는 이른바 학벌 좋고 경력 좋은(물론 학벌이 좋다고 인재라는 얘기는 아니다. 나는 그런 편견은 버린 지 오래다) 지원자가 드물었다. 면접을 볼 때 가장 많이 고려했던 것은 지원자의 생각과 표정에 의지와 어떤 벤처정신이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물론 이런 정의조차도 애매하기는 마찬가지지만, 일단 본인의 입으로 “나는 어려운 상황을 뚫고 나 자신을 던져 뭔가 이뤄내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을 뽑았다. 전체적인 회사 분위기가 그런 정신을 강조하면 객관적인 조건으로 봤을 때 평범한 고양이였던 사람이 시간이 흐르면서 호랑이로 변하는 마술을 몇 번이고 목격할 수 있었다.
고양이가 호랑이가 될 수 있는 것은 어쩌면 간단하다. 자신의 일에 스스로 가치를 부여하고 누가 시켜서 일하기보다 이런저런 고민을 섞어서 어떻게 하면 더 잘 할 수 있을지 혹은 힘들어 보이는 일도 어떻게 하면 이룰 수 있을지에 골몰하는 사람은 곧잘 질적인 성장을 거두곤 한다. 스스로 기회를 만들면 만드는 만큼 성과도 본인이 가져갈 수 있는 곳, 그래서 작은 회사가 이런 벤처정신이 있는 사람에게는 더욱 매력적인 것 같다.
그런데 고양이가 호랑이로 변화하는 마술을 대기업에서는 목격하기 힘들다. 첫 번째로 큰 기업에서는 좀처럼 고양이를 뽑으려 하지 않는다. 또 회사의 조직이 혹은 그 분위기가 구성원을 압도해 뭔가 해보려는 사람은 오히려 이런저런 뒷말에 시달리는 경우를 본다. 회사의 규모와 상관없이 ‘정신’이 살아 있지 못한 회사다. 그래서 그런 기업에서는 호랑이가 몸만 무거운 부뚜막 고양이로 변모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을 따름이다.
◆이지선 미디어U 사장 easysun@mediau.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