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쯤 집에 디지털TV를 들여놓았다. 처음 디지털TV를 시청하면서 HD 또는 SD급 고화질 영상으로 드라마나 다큐멘터리 등 프로그램을 보는 재미가 꽤 쏠쏠했다. 그러나 디지털TV를 시청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문제가 생겼다. 아파트 공시청 시설(MATV)을 이용해 디지털TV를 시청했는데 갑자기 디지털 방송채널이 먹통이 돼 버렸다. 아날로그 방송 채널을 수신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으나 디지털 채널을 오랜 시간 시청하면 갑자기 화면이 깨지고 급기야 수신불능 상태가 되곤 했다. 가전사 AS센터에 문의한 결과 TV에는 문제가 없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문제는 아파트 공시청 설비에 있었다. 디지털 방송 수신 시 공시청 설비에 잡신호가 발생, 디지털 방송 채널이 먹통이 돼 버린 것이다. 케이블TV로 디지털TV를 시청하면서 먹통문제는 해결됐으나 공시청 시설로 디지털TV를 시청할 때보다는 화질이 떨어진다는 느낌을 받는다.
최근 공시청 시설을 놓고 방송사업자 간에 묘한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얼마 전 정연주 KBS 사장이 “케이블TV업체가 아파트의 공시청망을 훼손해 지상파 방송을 제대로 볼 수 없도록 했다”고 주장해 케이블TV업계가 발끈한 적이 있었다. 만일 KBS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빨리 책임소재를 규명해 아파트 등 공동주택의 난시청 문제를 해결하는 게 급하다. 그렇지 않으면 디지털 전환에 따른 민원이 앞으로 봇물을 이룰 수도 있다.
가뜩이나 우리나라의 디지털 전환 속도는 더딘 편이다. 디지털 방송을 시작한 지 벌써 6년이나 됐지만 디지털TV 보급률은 25% 선에 그치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아날로그 방송이 종료되는 2012년 12월 이후에도 디지털TV의 보급률이 저조해 디지털 전환 정책이 실패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정부가 제정을 추진 중인 ‘디지털방송활성화 특별법’만 믿고 있다가는 낭패보기 십상이다.
요즘 일본도 디지털TV의 보급률이 저조해 고민에 빠졌다고 한다. 아날로그 방송의 종료 시점인 2011년을 불과 4년 남겨두고 있는데, 디지털TV 보급률이 27%를 약간 웃도는 정도라고 하니 그럴 법도 하다. 4년 남짓한 기간 동안 전 가구에 디지털TV나 디지털 컨버터를 보급해야 하는데 만만치 않은 일이다.
우선 디지털TV 구입 비용이 시청자에게 적지 않은 부담이 되고 있다. 현재 32인치 LCD TV 가격이 평균 15만∼25만엔인데, 시청자는 디지털TV 가격이 더욱 떨어질 것을 기대해 디지털TV 구입을 망설이고 있는 단계라고 한다. 일본 정부는 가전업체를 대상으로 2년 이내에 5000엔 이하의 저가 디지털 컨버터의 판매를 요구하는 등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으나 효과를 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경제적인 이유로 디지털TV나 디지털 컨버터를 구입하기 힘든 저소득층의 디지털 전환을 지원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도 일본 정부의 숙제다. 대략 40억엔대의 디지털 전환 비용을 조달해야 하는 방송국의 처지도 딱하기는 마찬가지다.
이 같은 문제가 모두 해결된다고 해서 디지털 전환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2011년 이후 폐기물로 버려지는 아날로그 TV의 처리방안이 또 다른 골칫거리가 될 공산이 크다. 그야말로 곳곳이 지뢰밭이다.
우리나라는 원래 2010년쯤 아날로그 방송을 중단하기로 했으나 2012년 이후로 연기된 상태다. 다소 시간을 벌기는 했지만 5년이란 시간이 결코 길게 느껴지지 않는다. 빨리 디지털 전환에 따른 제반 문제점을 속속들이 파악해 대응책을 마련하는 게 급선무다. ‘디지털방송활성화특별법’을 제정했다고 손을 놓고 있을 수 없다. 공시청 설비 점검부터 폐기되는 아날로그TV까지 신경 쓸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5년이란 시간을 길게 봤다가는 큰코다친다.
◆장길수 논설위원ksj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