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는 IT 및 BT 산업의 발상지로 잘 알려져 있다. 나는 코리아서머인스티튜트의 운영과 강의를 맡아서 버클리 법대 기술과 법센터(Berkeley Center for Law & Technology)에 머물면서 실리콘밸리에서 로스쿨이 어떠한 역할을 하는지 자세히 살펴볼 기회를 가졌다. 최근 우리나라도 이른바 ‘로스쿨법’을 제정해 대부분의 대학이 로스쿨 설립 준비를 위한 비상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과학기술과 로스쿨의 관계는 매우 중요하다는 점에서 실리콘밸리에서 바라본 대학의 역할, 특히 로스쿨의 기능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째 실리콘밸리의 세계적인 기업 뒤에는 우수한 대학이 있다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실리콘밸리에서는 박사과정 학생이 창업을 해서 HP 또는 구글과 같은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것이 아주 자연스럽다. 기업은 대학에 연구비를 지원해서 최첨단 과학기술의 연구개발(R&D)을 가능하게 도와준다. 대학은 기술을 개발하고 기업은 대학을 지원하는 선순환의 협력관계는 대학이 기업과 소비자의 수요에 충실한 교육과 연구를 수행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로스쿨도 수요자 중심의 교육을 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예컨대 실리콘밸리의 로스쿨은 현지의 기업과 소비자가 필요로 하는 지식재산권법·금융법·기업법 관련 지식으로 무장한 법조인을 배출해 낸다. 로스쿨은 기업과 소비자가 직면하고 고민하고 있는 법률적 문제가 무엇인지 연구하고 그 연구결과를 토대로 교육을 진행한다.
우리 법대의 현실과 크게 다르다. 이제까지 우리나라의 법대는 사법시험을 출제하고 시험과목을 중심으로 강의를 해왔다. 사법시험문제는 우리 현실의 수요자가 무엇을 원하는지와 전혀 무관하게 출제돼 왔고 법대 교수는 법학지식의 공급자 위치에서 자신의 전공의 중요성만을 강조해온 것이 사실이다. 로스쿨을 만든다는 것은 공급자 중심의 법학교육에서 벗어나 수요자 중심의 비전과 철학으로 대전환한다는 것이다.
둘째 수요자가 커다란 변화를 겪고 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실리콘밸리의 기업은 첨단기술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창업에서부터 사업전략 수립 그리고 일상적인 경영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이 법률적 문제임을 철저히 경험하고 있다. 예컨대 구글의 막대한 수익의 원천이기도 한 키워드광고는 상표권침해의 위험에, 구글어스는 프라이버시 침해의 위험에 그리고 구글 라이브러리는 저작권침해 가능성이라고 하는 아슬아슬한 줄타기와 법률적 모험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단순히 기술적·경영학적 검토만으로 부족하고 반드시 법률적 판단을 함께 병행해야 한다. 그런데 첨단기술 또는 새로운 시장이 제기하는 법률적 문제는 법원도 법조인도 그 정답을 찾기 어려운 초유의 문제인 경우가 많다. 바로 여기에 실리콘밸리의 로스쿨이 기여할 수 있는 독특한 역할이 있는 것이다. 로스쿨은 기업과 소비자가 고민하고 있는 기술적 문제와 사업경영상의 문제를 법률적인 차원에서 분석하고 연구하고 학생을 훈련시키는 곳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나라 기업과 소비자도 마찬가지 고민과 수요를 가지고 있다. 이제 로스쿨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우리 기업과 소비자가 똑똑한 목소리로 주장할 때다. 로스쿨은 교육부나 법조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기업과 소비자를 위한 것이라고. 우리도 로스쿨 설립을 계기로 긴밀한 산학협력의 고리를 만들어야 한다.
셋째 로스쿨은 단순히 법률해석을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 첨단기술과 경영상의 해결책을 연구하고 훈련하는 곳이기도 하다. 기술집약적 산업구조에서 로스쿨은 각종 첨단기술상품의 수요자로서 기업경영의 파트너가 될 수도 있다. 로스쿨은 전문대학원이기 때문에 교수는 물론이고 학생도 모두 값비싼 데이터베이스와 휴대형 컴퓨터 그리고 최신 통신단말기를 사용하는 수요자에 해당되고 무선인터넷과 영상강의에 관한 최첨단기술의 시험장이 되기도 한다. 무선인터넷 또는 휴대인터넷의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야 할 우리 기업으로서는 로스쿨 설립이 새로운 사업모델을 시험하는 절호의 기회이자 상생의 산·학협력을 실현할 수 있는 호기인 것이다.
◆정상조 서울대 법대 교수 sjjong@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