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 CEO의 도덕 지능지수

[ET단상] CEO의 도덕 지능지수

 “아빠는 대기업 임원이고 엄마는 부사장인데 우리 집은 왜 부자가 아닌가요?” 느닷없이 중학생 딸아이가 묻는다. “엄마는 우리 집이 부자라고 생각하는데….” 철없는 유치원생도 아닌 중학생 딸의 질문은 여러 가지 생각을 떠오르게 했다.

 딸이 느끼는 상대적인 빈곤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맞벌이 부부로 18년간을 꼬박 일해왔는데 그간 내가 성취한 것은 무엇일까. 결혼하고 15년 만에 서울로 입성해 서울시민이 됐다고, 강남특구 주민이 됐다고 감격했던 것도 아주 잠시. 나 역시 우리 딸처럼 상대적 빈곤감을 느껴야 했기 때문이다.

 지금껏 복권·로또 한 번 사본 적 없고 그저 월급 모아 마련한 서울시 강남구 빌라. 그렇게 어렵게 입성한 이곳의 이웃은 신혼부부와 젊은 부부가 대부분이 아닌가. 이 집 하나를 장만하기 위해 지금껏 지켜온 바른 생활 인생관은 과연 의미있는 것일까.

 2001년 1월 지금의 회사를 공동 설립, IT 컨설팅사업을 시작했다. 이미 새로운 e비즈니스 솔루션을 중심으로 많은 닷컴회사가 생겨나면서 벤처 붐이 일던 때였다. 그 속에서 ERP사업을 주력으로 했던 우리 회사는 당시 분위기와 동떨어졌다. 실제로 한 닷컴 회사 대표는 “남들이 이미 다 아는 아이템을 갖고 어떻게 새로이 사업을 시작하느냐, 남들이 잘 모르는 새로운 걸 해야 거짓말하기도 쉽더라”고 말한 적이 있다. 많은 벤처가 상당한 자금을 유치해 풍족한 경영을 했지만 이내 그 거품이 빠지는 위기를 겪는 동안 우린 자력으로 회사를 키웠다.

 당시 우리도 외부 투자를 얼마든지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고생하며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저력이 있어야 회사가 더 탄탄하게 큰다고 믿고 외부 자금을 거절했다. 외부 자금 없이 인원 15명, 매출 20억원으로 시작한 회사는 7년 만에 150명, 200억원 이상의 규모로 성장했다. 아직 만족스럽지는 않다. 하지만 조직과 함께 성장했다는 느낌은 나에게는 큰 보람이다. IT 컨설팅이란 쉽지 않은 비즈니스를 외부 도움 없이 오직 실력으로 승부, 고객 신뢰를 얻어 이만큼 성장했다는 것은 웬만한 도전정신으로는 달성하기 어렵다. 눈앞의 수익성보다는 장기적인 고객과의 신뢰를 쌓는 것에 목표를 두고 최선을 다해 온 결과라 믿는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치열한 수주경쟁 속에서 목적이 점점 수단을 정당화시키는 현실 안에서 바른 생활 규칙을 지켜내는 것은 쉽지 않다. 사업은 제 돈으로 하는 게 아니라는데 적당하게 자금을 유치해 책임을 줄이고 쉬운 방법으로 경영할 수 있지 않을까, 영업비용도 줄이고 프로젝트의 책임을 줄이면서 적절하게 인력운용만 하면 좀 더 쉽게 수익을 낼 수 있지 않을까,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면서 좀 더 쉽게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도 있다는 유혹은 지금도 참으로 많다.

 너무나도 평범하고 중요해서 진부하기조차 한 ‘원칙주의’를 후배들에게 강조하는 나는 고리타분한 기성 세대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양질의 교육을 시켜 다른 사람에게 존경받으며 베풀 수 있는 인재로 키우고 싶은 부모의 마음을 아이들은 조금이라도 알까.

 국내외 유수 기업의 회계부정 스캔들을 접하며 씁쓸한 미소를 짓게 되고 소신을 지키기보다는 적당히 현실에 타협하고 의도적으로 정치적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기업에서 성공하고 자리를 지키는 현실을 보면서 어떻게 사는 것이 성공한 리더가 되는 것인지 많은 고민을 하게 된다.

 도덕적 지능과 성공하는 사람들의 함수관계를 설명한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실제로 성공한 기업의 리더는 도덕 지능이 높다는 것이다. 도덕적 잣대를 지켜나가는 것이 옳고, 보편적인 원칙을 지키는 것이 기업에도 옳은 길이라는 것이다. 그것이야 말로 최고 기업이 최고의 성과를 이루는 길이다.

 나는 그 분석을 철저히 믿고 싶다. 아니 믿는다. 그것이야말로 조직·사회의 이익보다 자신의 이익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소신을 지키고 우리 회사를 ‘바른 생활 주식회사’로 키워가는 힘이다. 더 나아가 이 사회를 정화하고, 지속적인 성장을 가능하게 하리라 믿는다.

◆권정자 프론티어솔루션 부사장 jjkwon@frontier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