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제한된 재원에도 불구하고 연간 약 10조원을 투입하고 있는 과학기술개발사업에서 큰 성과를 기대하는 것은 농부가 힘든 노력 끝에 풍성한 결실을 기대하는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농부는 비옥한 토지를 만들고 전망이 좋은 작물을 택해 건강한 씨앗을 뿌린 후 각종 잡초와 병충해·자연재해와 싸워가면서 풍요로운 수확을 기대한다. 이 요소를 국가R&D사업에 대비시키면 ‘비옥한 R&D 환경, 좋은 프로젝트 선정, 훌륭한 개발팀 구성 그리고 적절한 관리’라고 할 수 있다.
훌륭한 성과를 기대할 수 있는 비옥한 토지, 곧 R&D 환경은 어떤 것일까? 정의가 쉽지 않겠지만 ‘확고한 목표의식으로 도전을 즐기는 연구자들이 일생을 바쳐 열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는 연구자들이 서로 존중하고 신뢰하며 협력하는 분위기에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과학기술분야의 출연연구기관(출연연)들이 설립된 지 30여년이 지났고 그동안 크고 작은 성과로 산업 및 국가경제 발전에 기여했다. 이런 성과에도 불구하고 R&D의 효율성과 효과성을 놓고 자성과 비판은 그치지 않았고 최적의 R&D 시스템을 갖추기 위해 여러 방안이 시도됐다. 기관의 통폐합과 분리, 재원의 확대 및 지원 방안, 기관관리체제, 사업관리체제, 기관장 선임 등등. 그리고 성과를 기대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기 위해서도 여러 가지 조치를 취했다. 그러나 현재의 상황을 보면 연구자들의 목표의식은 분명하지 않고 상호 간의 존경과 신뢰는 미약하며 협력보다는 경쟁이 우선하는 현실이다. 이것은 그동안 토양을 개질하기 위해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좋은 점보다는 역효과가 더욱 크게 나타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참여정부가 출연연의 성과에 자성을 촉구하면서도 출연연의 활성화를 위해 여러 가지 시책을 추진하고 있는 것은 매우 다행스럽다. 그중에서도 연구원들이 성과보다는 연구비 확보에 주력해야 하는 환경을 개선하고 1년 근무에 1개월의 급여에 해당하는 퇴직금과 국민연금에 의존해야 하는 노후의 불안감을 감소시키기 위한 ‘과학기술 인력관리 특별지원사업’이 바로 그것이다.
이 사업은 지난 9월 차세대 초전도 핵융합연구장치(KSTAR) 완공식에 참석한 대통령께서 “과학기술인의 생애 전(全)주기적 육성지원 정책의 일환으로 내년도 ‘과학기술 인력관리 특별지원사업’에 600억원을 우선적으로 반영하라”고 김우식 과학기술부총리에게 지시함으로써 현실화됐다. 과기부는 이미 확보한 400억원과 내년에 확보하는 600억원 그리고 앞으로 5년간 1000억원 등 총 2000억원을 조성, 과학기술인의 사기를 진작하는 데 활용한다고 한다. 이 기금을 관리하게 될 ‘과학기술인공제회’는 과학기술인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 2000억원의 이자 등 연간 수익금 150억원 전액을 연구원의 복지 지원과 퇴직 시 특별 공로금 형태로 지급하겠다는 것이다. 정부 처지에서 사용할 수 있는 재원은 한정돼 있고 투자를 해야 할 부문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과학기술인의 사기를 진작하기 위해 예산을 지원해 준 것은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런 조치만으로 비옥한 환경이 이뤄지는 것도 아니며 정부 노력만으로 국가 R&D 성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정부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기는 하지만 무엇보다도 출연연에 종사하는 연구자들이 정부와 국민 그리고 산업체에서 인정과 박수를 받을 수 있는 성과를 이룰 때 비옥한 토양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 배가되는 선순환이 이뤄진다는 것이다. 비옥한 대지에 잡초만 우거지도록 방치하거나 잡초만 우거지도록 토양에 거름을 주는 농부는 없을 것이다.
출연연에 종사하는 우리 모두는 국가경제의 성장을 견인함은 물론이고 국가 차세대 성장동력을 확보함으로써 지금까지 국가와 국민에게 받은 애정과 보살핌에 보답하고 국가의 밝은 미래를 열기 위해 열과 성을 다해야 할 것이다.
◆박동욱 <한국전기연구원장> dwpark@ker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