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안전하고 믿음직한 정보사회로 가는 길

[ET단상]안전하고 믿음직한 정보사회로 가는 길

 ‘이코노미스트’지 최근호는 정보화사회에서 개인정보 수집 신기술과 그 남용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장문의 칼럼이 게재돼 관심을 집중시켰다. 개인의 소재와 구매내역·행동 등 사생활의 데이터가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수집·저장·공유되면서 프라이버시가 서서히 침해되고 있지만 사람들은 거기에 익숙해지고 있어 마치 ‘뜨거운 물 속의 개구리(boiling frogs)’ 같다고 한 내용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이처럼 정보화가 진전되면서 대량으로 수집·저장되는 개인정보의 문제는 전 세계적인 현상이 된 듯하다.

 국내에서도 유명 온라인게임 사이트에서 주민번호가 유출되면서 다수의 명의도용 사건이 있은 지 어느덧 1년 6개월이다. 그동안 정부는 후속대책으로 24시간 상시점검 및 삭제 체계를 운용하고 있지만 인터넷상에 노출되는 주민번호는 근절되지 않고 있고 명의도용 범죄 또한 지속되고 있다. 온라인 환경에서 이용자 본인을 확인하는 방법으로 주민번호가 널리 활용되는 탓에 자칫 부주의나 고의로 주민번호가 노출되면 각종 명의도용 범죄에 악용되는 태생적인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한국정보보호진흥원 내의 개인정보침해신고센터에 따르면 주민번호 등 개인정보 도용으로 인한 신고건수가 2003년에는 8000여건이었던 것에 비해 지난해에는 1만 여건으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이나 일본도 주민등록번호와 유사한 사회보장번호(SSN)와 주민표 코드를 갖고 있지만 이용범위나 목적 등은 법률로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일본은 민간영역에서의 주민표 코드 이용을 철저히 제한하고 있으며 행정기관도 법률에 규정된 경우에만 수집 및 이용이 가능하다.

 우리나라에서도 그동안 언론과 국회, 시민단체에서 주민번호 수집 제한과 대체 수단의 도입 필요성을 끊임없이 제기했고 이에 부응해 정통부는 2005년 주민번호 대체수단인 아이핀(i-PIN)을 도입하기로 했다. 인터넷상 개인식별번호(Internet Personal Identification Number)라는 뜻을 갖는 아이핀은 대면확인이 어려운 온라인에서 주민번호를 대신해 본인확인을 받을 수 있는 수단이다.

 이런 노력의 결실로 아이핀의 한계로 지적돼왔던 외국인미성년자 등의 발급수단을 마련하고 5개 본인확인기관간 연동방안을 마련하는 등 이용자 및 기업 모두 불편이 없도록 기능을 개선했다. 또 본인확인 시 주민번호 입력이 불필요한 본인확인 수단의 제공을 의무화하도록 해 이용자의 정보 제공 선택권이 보장되도록 법·제도적 환경 정비를 추진 중이다.

 일부에서는 금융결제가 주민등록번호 체계로 돼 있어 아이핀 도입 시 가입단계와 결제단계로 나눠 이중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거나 시스템 재구축 비용 부담이 크다는 등의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이미 MSN·다음·네이버 등 주요 포털이 도입해 운영 중이다. 또 아이핀을 도입하더라도 결제와 관련된 별도의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 없이 결제대행사와 프로세스상의 연계만으로도 충분한 것으로 확인됐다. 무엇보다도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개인정보의 중요성을 감안한다면, 또 인터넷상에 공개됐을 때의 위험성을 고려한다면 더 이상 아이핀의 제도화를 미룰 수는 없다. 기업도 지속가능한 성장을 원한다면 사회적 책임을 분담해야 할 시기다.

 지금 우리는 고도화·지능화된 유비쿼터스 사회로의 진입을 목전에 두고 있다. 그러나 성공적인 유비쿼터스 사회로 안착하기 위해서는 정보통신환경의 신뢰성 확보가 무엇보다도 선행돼야 한다. 당장 눈앞의 이익보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본다면 그 편이 기업에도 이익이다. 지난해 1월 미국은 약 14만명의 개인정보를 유출한 초인스포인트 사에 연방거래위원회 사상 최고액인 1000만 달러의 벌금과 5000만달러의 손해배상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아이핀은 이용자 위치에서는 고질적인 주민번호 유출·오남용에 따른 개인정보 침해 위험성을 최소화할 수 있고, 기업들은 개인정보보호 수준을 가일층 강화해 고객 신뢰를 더욱 공고히 할 수 있는 최선의 솔루션이다. 초기 단계의 일시적 비용 부담보다 훨씬 더 큰 수혜가 기업과 국민, 사회 전체에 돌아갈 것임을 우리 모두 명심해야 할 시점이다.

◆서병조 <정보통신부 정보보호기획단장> bjsuh@mic.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