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의회가 추진 중인 이민법 개혁안이 정보통신(IT) 업계 노동자들의 반발을 사면서 노·사 갈등의 핵으로 떠올랐다.
주로 해외 IT 고급인력에게 발급되는 전문직 취업비자 H-1B의 연간 발급건수 상한선을 철폐해 달라는 기업들의 요구가 이민법에 반영될 가능성이 커지자 현지 노동자들이 생존권 위협 가능성을 제기하며 극렬한 반대의사를 표명하고 나선 것.
인터넷·소프트웨어나 전자·정보통신 분야 등에 주로 종사하는 이들 기술 노동자는 ‘프로그래머 길드’라는 연대 노동조합을 통해 15일(현지시각) 의회에 탄원서를 제출, 집단 움직임에 나섰다.
노동자들은 탄원서에서 “이(이민법 개혁안)는 재앙”이라며 “미국 내 일자리는 미국인들로 채워져야 하며 적임자가 없는 부득이한 경우 해외에서 대체 인력을 찾는 게 마땅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는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 에릭 슈미트 구글 CEO 등 IT업계 경영자들이 줄기차게 H-1B 비자 무제한 발급을 주장해 온 것과 배치되는 것이어서 의회의 이민법 개혁이 자칫 노·사 간 대리전 양상으로 흘러갈 조짐을 보이고 있다.
빌 게이츠 회장은 최근 의회 청문회에 출석해 “미 IT산업 경쟁력을 살리고 인력난을 극복하기 위해 H-1B 비자 제한이 철폐돼야 한다”고 강력히 요구한 바 있다. 인도·중국 등 해외 인력 비중이 높은 실리콘밸리 대다수 기업 CEO들도 이에 동조하며 의회에 다각도의 로비를 전개해 왔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기업들이 비자 제한 철폐를 원하는 진짜 속셈은 해외의 값싼 인력을 대거 유입함으로써 인건비를 낮추려는 데 있다”고 맹비난하고 있다.
여기에 전기전자공학회(IEEE) 미국 지부와 반도체산업협회(SIA) 등 업계 이익단체들이 지난 11일 미 의회에 “미국으로 유학온 해외 학생들이 기술이나 과학 관련 학사 이상의 학위를 취득한 후 국내에 취업할 경우 영주권을 부여하라”고 청원하면서 노사 갈등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됐다.
존 메레디스 IEEE 미국 지부장은 “미 IT업계에 정리해고가 만연하고 고용이 불안한 것은 임시 비자를 소지한 비정규직 인력이 많기 때문”이라며 “해외 우수 인재들에게 영주권을 부여, 안정적인 지위를 보장한다면 평균임금이 하락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상승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IEEE와 SIA의 움직임에 대해 프로그래머 길드 측은 회원들의 IEEE 탈퇴도 불사하겠다며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고 있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이자 프로그래머 길드 집행부 일원인 척 헨드릭 씨는 “중립을 취해야 할 IEEE 등이 기업의 편을 들어 정치적 꼭두각시로 전락하고 있다”고 통박했다.
조윤아기자@전자신문, forang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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