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치는 작아도 기술력 믿고 해외로 간다.”
국산 통신·방송 장비업체들이 자신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글로벌 시장을 공략한다. 시스코시스템스·알카텔루슨트·주니퍼네트웍스와 같이 수십년간 다져온 기술력과 거대 자본력을 바탕으로 세계 통신장비 시장을 휘어잡은 거대기업과 경쟁하기엔 아직 힘이 모자라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국산 중소·벤처 네트워크 기업은 한국에서 인정받은 중계기·홈네트워크·게이트웨이·IP멀티미디어서브시스템(IMS) 등을 앞세워 틈새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따로 또 같이=해외 시장을 뚫으려는 통신·방송 장비업체들의 노력은 줄기차다. 국내 시장 포화로 인해 해외 진출만이 희망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절박하다. 지난해만 해도 실적이 미미했지만 올해 들어 달라졌다. 개별 업체마다 잇따라 해외 수주에 성공하면서 ‘하면 된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서울통신기술은 지난해 중동 두바이 최고급 주상복합아파트에 홈 네트워크 시스템 100만달러 규모를 수출한 데 이어 중국 고급 빌라와 아파트에도 홈 네트워크 시스템을 공급 중이다. 올해 중국에서만 총 8000대 이상의 홈 네트워크 시스템을 수출할 예정이다. 특히 최근 말레이시아의 유럽통화방식(GSM)사업자 디지와는 향후 5년간 300만달러 규모의 차세대 음성메시징시스템(VMS) 수출 계약을 했다. 이 계약으로 서울통신기술은 오는 2011년까지 말레이시아 수방·페낭·쿠칭·조호바루 4개 도시 이동전화 교환국에 VMS 장비 및 솔루션을 공급하게 된다.
다산네트웍스는 일본·미국 등 해외 사업에 더욱 박차를 가한다. 일본 USEN에 이어 올해부터 소프트뱅크 BB에도 VDSL장비를 공급할 예정이다. 미국 현지 장비업체를 통한 주문자상표부착(OEM) 방식의 장비 공급도 추진한다. 특히 지난 4월 회사 최대 주주가 ‘노키아지멘스네트웍스’로 변경됨으로써 글로벌 네트워크 시장을 적극 공략하고 있다.
기산텔레콤은 지난 7월 280억원 규모의 캄보디아 정부 및 지방행정전산망 및 국가정보통신망 구축 사업을 수주했다.
지난달에는 유니모테크놀로지(대표 정진현)가 말레이시아에 말레이시아 통신업체인 사자드사와 테트라 TRS(주파수공용통신) 단말기(모델명 MU-1000) 8만대 규모(598억원)의 공급계약을 했다. 유니모테크놀로지가 공급하는 테트라 TRS단말기는 국내 및 아시아 최초로 기술 국산화에 성공한 제품이다. 지금까지 전량 외국제품을 수입해 사용했으나 지난해 10월 유니모테크놀로지가 미국 통신장비회사 머큐리와 함께 최초로 기술 국산화에 성공한 뒤 올 4월부터 양산을 시작했다.
장비업체 간 협업도 해외시장 개척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기산텔레콤·텔코웨어 등 국내 10여개 중소 통신장비업체와 한국네트워크연구조합은 지난 8월에 ‘NGcN공동마케팅협의회’(회장 이형모 뉴그리드테크놀로지 사장)를 구성했다. 컨소시엄 형태로 해외 통신 관련프로젝트에 직접 진출, 장비 수주에 나서고 있다. 동남아 지역의 유무선통신사업자들과 제품 공급을 위한 업무 협의를 활발히 진행하고 있어 머지않아 성과를 낼 것으로 보인다.
이성민 파이오링크 일본지사장은 “성숙기에 접어든 국내 네트워크 시장에서 과당 경쟁을 하기보다는 적극적인 해외 사업을 통해 새 돌파구 마련도 필요하다” 고 말했다.
◇신규 서비스와 함께 장비도 해외로=신개념 서비스가 해외로 진출하면서 덩달아 통신장비도 수출되는 사례도 나타났다. 가장 대표적인 품목이 휴대인터넷(와이브로/와이맥스)이다. 삼성전자는 작년 8월 미국 최대 유무선 통신사업자 중 하나인 스프린트넥스텔과 와이브로 상용 장비 공급에 관한 전략적 제휴를 맺었다. 스프린트넥스텔은 와이브로를 차세대 4G 통신서비스 공식 플랫폼으로 채택, 내년부터 미국 전 지역에서 상용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다. 국내서 개발한 서비스와 기술 자체가 수출됐기 때문에 삼성전자는 와이브로 기지국, 중계기 등 각종 장비 및 시스템 수출 외에 로열티 수익도 얻을 수 있다.
서비스 산업의 해외 진출은 연관산업에도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온다 게 업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통신서비스 사업자가의 해외 진출이 가속화되면 네트워크 장비업체의 동반진출을 이끌어 국익에도 도움이 된다. 지나치게 내수 위주로 구성된 국내 정보기술(IT) 산업구조의 불균형 개선과 국가경쟁력 강화로 이어질 수도 있다. SK텔레콤·KT 등의 해외 진출 노력을 통신서비스 사업자뿐만 아니라 장비 업체에도 주목하는 이유다.
IT 발달로 산업 간 영역이 허물어지면서 새로운 사업기회가 속속 생겨났다.
특히 올해 본격화한 와이브로·WCDMA 등 신규 통신서비스 투자가 본격화면서 장비업체에 새 기회를 안겨줬다.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도 차세대 홈네트워크, 디지털멀티미디어(DMB), 인터넷프로토콜TV(IPTV) 등 차세대 통신인프라 구축이 본격화 되고 멀티미디어 콘텐츠에 대한 요구가 높다.
이에 서울통신기술·콤텍시스템 등 통신장비 업체와 디디브이인터랙티브·씨아이에스테크놀로지 등 방송장비업체는 중계기·스위치와 MPEG DMB 계측기 장비 등을 앞세워 해외시장 선점을 위해 신제품 개발을 강화하고 있다.
IP멀티미디어서브시스템, 인터넷전화(VoIP) 등 유무선과 통신·방송의 경계가 점차 사라지면서 대용량 멀티미디어 서비스를 간단하고 효율적으로 구현하길 원하는 통신사업자의 요구도 증가했다. IPTV의 활성화에 따른 통신네트워크 장비교체 수요는 파이오링크 등 국산 스위치 장비업체들의 또다른 도약의 기회다.
장비업체들도 국내 통신 방송 사업자의 기술 파트너로서 동반 진출을 꾸준하게 진행하고 철저한 현지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21세기형 수출 지원정책 필요=업계는 정부의 정책적인 지원을 절실하게 여긴다. 한 업계 관계자는 “해외진출과 수출이 중국·미국·동남아 등지에만 집중된데다 품목도 여전히 단순하다”며 “선택과 집중 전략을 취하고 있지만 조그만 위기에도 각 기업 수출 전체가 어그러질 수 있는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와이브로와 DMB, RFID 등 외국 솔루션과 비교해 기술적 우위를 확보하고 있는 아이템 등의 수출을 장려하는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장비업체들은 정부에 적극적인 IT외교와 통신사업자 해외 진출 유도를 바란다. 현지 정부와 교류해 우리가 경쟁력 있는 서비스를 해당국가도 도입할 수 있도록 해줘야 장비업체들도 기회가 생긴다. 통신사업자들이 글로벌 사업을 펼칠 수 있도록 제도적 지원도 필요하다. 정부 기관끼리의 협력도 절실하다. 외국에서 벌어지는 전시행사에 우리나라의 다른 두 기관이 같은 장소에서 별도의 전시 공간을 꾸미는 웃지 못할 상황은 더이상 곤란하다는 게 업계의 지적이다.
구교광 네트워크연구조합 사무국장은 “정부 차원에서 대기업에 올인하는 수출 전략이 아닌, 중소기업도 참여할 수 있는 상생 전략과 아울러 개발도상국을 중심으로 교두보를 마련해 대상 지역을 늘려가는 수출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태권기자@전자신문, tk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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