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올해부터 사단법인 대학정보화협의회장 업무를 맡고 있다. 협회는 전국 4년제 및 2년제 대학의 전산처장들이 모여 현안을 검토하고 바람직한 대학 정보화의 미래를 검토하는 단체다.
대학은 현재 대부분의 업무가 전산으로 처리되고 있다. 각종 증명서 발급부터 학생 성적조회, 장학금 배정, 수강신청 등과 같이 학내에서 벌어지는 모든 문제가 전산으로 처리되고 있으며 전산 시스템이 정지되면 모든 작업이 마비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학내망 확충이라는 과제도 심심치 않게 떠오른다. 인터넷망 용량을 지속적으로 늘려가고 있으나 수요는 이보다 더 빠른 속도로 증가하면서 항상 불만의 대상이 된다. 그러므로 전산 관련 인력은 잘해야 본전, 노력을 해도 별로 칭찬받지 못한다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히는 일이 많다. 실제로 학교 업무 대부분이 전산으로 처리되고 있는데도 많은 대학의 직원 수는 전체 직원의 5%도 안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현장 일손이 부족해 증원을 요청해도 신규 직원을 배정받기가 매우 어렵다.
그러나 이보다 더 심각한 것은 대학에서 사용하는 소프트웨어(SW) 문제다. 정품 SW를 사용하기 위해 대학에서도 사이트 라이선스 계약을 하고 있지만 사용하는 SW 종류와 장소가 다양해 불법 SW를 일일이 쫓아다니며 막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더욱이 제한된 소수의 인력을 갖고 시스템과 학내 망을 운용하는 데 허덕이는 실정에서는 문제가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SW 개발사는 사이트 라이선스 요금을 매년 꾸준히 올리고 있다. 동일한 계약일 때에도 계약인원을 늘리거나 가격 인상, 계산 방법 변화로 매년 유지보수비가 인상되고 있는 실정이다. 대학은 재정 대부분이 등록금에 의존하고 있으며 학생들의 등록금 인상 저지 투쟁도 매우 심각해 매년 봄 학기는 등록금 시름으로 전국의 각 대학이 몸살을 앓는다. 학생들의 요구를 수용해 원안에서 삭감된 금액으로 등록금이 확정되면 학교 재정에서는 불요불급한 금액이라고 판단하는 부문을 우선 삭감대상으로 선정하는데 전산 예산도 예외가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대학 전산화 담당자는 머리를 싸매고 제한된 금액 안에서 유지보수 비용 마련을 위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때로는 기업에 읍소를 하기도 하고 위협을 하기도 하고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지만 증가되는 금액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특히 통계 패키지 SW들은 근래 들어 유지보수 방식을 바꿔 몇 배로 인상하는가 하면, 대학병원이 있을 때에는 의대를 제외하고 병원에서 별도의 계약을 하더라도 의대의 기초 교수를 포함하지 않는 이상한 정책을 쓰고 있다.
협의회에서도 이런 문제를 풀기 위해 기업 CEO를 초청해 토론회를 벌이면서 상호 이해를 높이려 하고 있으나 아직 결과가 나오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담당자 사이에서는 대학의 정보화 수준 평가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물론 평가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쉽지 않겠으나 재학생 수에 비례한 예산 확보 및 증가율, 직원 수와 같은 정량적인 평가를 비롯해 학생에 대한 서비스 수준, 정보화 SW 보급 및 사용과 같은 정성적인 평가 등의 기준을 마련해 평가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판단된다.
공기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존재이나 이들에 대한 고마움을 모르고 산소가 부족해지는 것을 모르고 있다면 강제적으로라도 공기정화를 해야 나중에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 우를 범하지 않을 수 있다. 이제라도 대학 평가기관은 정보화 수준 평가에 대한 계획을 세워야 하지 않을까. 이미 정부의 정보화 평가는 여러 해에 걸쳐 시행되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고급 인력을 양성하는 대학의 정보화 수준 평가가 없다는 것은 너무 늦었다는 생각이 든다.
권영빈 <중앙대 컴퓨터공학부 교수·대학정보화협의회장>ybkwon@ca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