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도 추켜세우면 나무에 오른다’는 일본 속담이 있다. 몇 해 전 국내 서점가를 휩쓸었던 베스트셀러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와 일맥상통하는 얘기다.
몸무게가 3톤에 달하는 거대한 범고래도 조련사가 끊임없이 관심을 보이고 격려하고 칭찬하면 큰 덩치에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은 멋진 쇼를 펼쳐보인다는 내용이 많은 사람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개인과 조직을 넘어 ‘대한민국’호(號)를 춤추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은 비교적 분명하게 나와 있다. 국가 발전의 성장동력이 될 창의적인 연구와 혁신적인 기술개발을 북돋워주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직접화법으로 말하면 연구와 기술개발을 책임지고 수행할 우수한 과학기술 인력을 양성하고 이들이 다른 걱정 없이 신바람 나게 연구개발(R&D)에만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내년 실시되는 ‘과학기술 인력관리 특별지원사업’은 고무적이다.
R&D의 핵심 주체인 연구원의 노후복지 문제 해결과 사기 진작을 위해 현재 400억원 규모인 관련 기금을 2000억원으로 늘리고 이를 통해 해마다 150억원의 수익금으로 연구인력 복지사업을 시행한다는 것이 골자다. 당장 내년에 정부가 600억원의 특별자금을 지원하고 이후 5년간 매년 200억원을 보태 2000억원을 조성하게 된다.
이 같은 계획은 과학기술계의 숙원사업인 퇴직연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첫발을 내디뎠다는 데 의의가 있다.
물론 이 계획 하나로 과학기술인의 사기진작과 복지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는 않겠지만 단발성 조치가 아닌 큰 그림의 일환이라는 점에서 더욱 기대를 걸게 한다.
올 초 정부는 과학영재 발굴에서 교육·취업·연구·은퇴 등 과학기술인의 생애 전 주기에 걸쳐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전주기 인력 양성 체계’를 구축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교육-취업-연구-은퇴의 4단계 가운데 마지막 은퇴 단계에는 영년직 연구원·정년 후 연장근무·테크노닥터 등 유능한 연구인력에게 정년 후 기회 제공과 함께 과학기술인 공제회와 퇴직연금, 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 건설 등 퇴직 후 복리후생 강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과학기술 인력관리 특별지원사업’은 그 구체적인 시행 방침인 셈이다.
‘과학기술 인력관리 특별지원사업’은 당장은 나를 포함해 현재 과학기술계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이 수혜자가 될 것이다. 그러나 조금만 멀리 보면 유능한 인재가 이공계를 기피하는 작금의 상황을 개선해서 과학기술 R&D의 젖줄인 우수 인력을 확보하기 위한 거시적인 정책임을 알 수 있다.
이 사회를 구성하고 지탱하는 모든 직군이 필요한 곳에서 소임을 다해야겠지만 그중에서도 과학기술인에게는 21세기 무한경쟁 시대 국가의 미래지도를 그려가야 할 막중한 책임이 있다. 이공계 학생에게 드리운 장래에 대한 불안, 과학기술인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을 치유하기 위한 노력은 시의적절하다고 할 수 있다.
내년에는 R&D에 투입되는 정부 예산이 처음으로 10조원을 넘을 것으로 보인다. 연간 R&D 예산 10조원은 미국·일본·프랑스·독일·영국·이탈리아·중국에 이어 세계 여덟 번째다. 지난 5월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이 우리나라의 과학경쟁력을 7위, 기술경쟁력을 6위로 평가한 것을 감안하면 참여정부가 출범 당시 목표로 정했던 과학기술 8대 강국 진입에 외형으로나 내실로나 다가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궁극적인 목표인 ‘제2의 과학기술 입국’과 이를 통한 21세기 일류국가로 도약을 위해서는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조련사와 관객의 사랑과 관심 속에 춤을 추는 범고래처럼 국민의 성원과 정부의 지원으로 사기가 높아진 과학기술인이 열정적으로 R&D에 매달리고 그 결과 국민의 삶의 질을 끌어올리는 의미 있는 연구성과를 내놓는 날이 올 수 있도록 ‘과학기술 인력관리 특별지원 사업’이 단단한 디딤돌을 놓아주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정연호 <한국원자력연구원 원장 직무대행> yhjung@kaer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