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은 우리에게 무엇이며 우리는 과학기술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이 질문은 과학기술을 향한 가치관적 질문이며 과학기술이란 암호에 대한 사회의 해석을 묻는 것이다. 예컨대 과학기술을 문명의 단순한 수단으로만 바라보는 도구론적 주장에서는 과학기술을 그저 필요할 때 쓰고 버리는 물건 정도로 여길지도 모른다. 반대로 과학기술을 역사발전을 위해 필요한 목적으로 바라보는 존재론적 주장에서는 우리가 반드시 추구해야 할 지식요소로 여길 것이다. 어느 시대건 과학기술이 융성한 시대에서는 도구론적 시각보다는 존재론적 시각에서 과학기술에 접근했다는 것이 인류 발전의 과정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참여정부는 과학기술을 존재론적 시각에서 바라보고 이에 맞는 행정체계와 정책체계를 구축, ‘과학기술중심사회’를 구현하고자 했다. 우선 과학기술부총리제를 도입해 경제·교육 분야와 함께 과학기술이 삼각 축의 하나가 돼 국가 발전에 기여하도록 하고 과학기술혁신체제를 들여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국가혁신이 일어날 수 있도록 했다. 아울러 연구개발(R&D) 투자를 대폭 확대해 R&D 예산을 2003년 6.5조원에서 2007년에는 9.8조원으로 늘렸고 내년 예산은 10조원을 넘어서게 될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R&D 투자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국가 R&D 사업 토털 로드맵을 수립, R&D 자원이 전략적으로 투입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했다. 또 차세대 10대 성장동력사업을 적극 발굴·추진해 우리 미래의 먹거리도 마련하였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2006년 SCI 게재논문 수는 세계 13위, 국제특허 출원 수는 세계 5위권에 랭크됐다. 산업부문에서도 반도체 메모리분야는 세계 1위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으며 미래의 캐시카우인 3세대 이동통신 분야에서 와이브로(WiBro) 기술이 국제표준으로 채택되는 쾌거를 이뤘다. 이와 같은 일련의 사실은 우리의 과학기술이 과거 선진국의 속박에서 벗어나 이제는 우리도 당당히 세계 과학기술 선진국의 일원으로 도약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참여정부는 과학기술의 발전을 위해 많은 일을 했다. 그러나 아직 우리 앞에는 과학기술의 진보를 가로막는 장벽이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가 이공계 기피현상이다. 이공계 기피현상은 이공계 출신의 사회적·경제적 신분 저하로 사람들이 이공계 진출을 기피하는 것을 말한다. 이 현상은 뿌리 깊은 유교적 신분제도의 유물일 수도 있고 이미 활동 중인 이공계 출신의 낮은 사회적 기여 때문일 수도 있다. 물론 이공계의 수요 공급 차질에서 빚어진 현상일 수도 있다. 원인이 무엇이건 이공계 기피현상이 지속되면 우리 경제의 버팀목인 제조업의 기반이 송두리째 무너짐은 물론이고 우리는 다시금 과학기술 후진국, 나아가 경제 후진국으로 밀려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우리 미래의 존망이 걸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학기술은 일종의 권력이다. 부르디외의 이론을 따르지 않더라도 지식이 권력임은 자명하다. 그런 의미에서 과학기술은 분명한 권력이다. 과학기술의 발전이 가속화되면 될수록 과학기술의 권력화는 다양한 형태로 진행될 것이다. 따라서 과학기술 관리가 앞으로 중요한 문제로 대두될 것이다. 더욱이 과학기술이 세계를 바라보는 인식의 창이라는 데에서 그 중요성을 더한다. 우주 탐구가 우리의 공간적 인식을 무한대로 확장했듯이 사이버 세계의 급속한 발전은 우리의 아이덴티티를 무한히 확장하고 있다. 앞으로 로봇의 발전은 새로운 사회적 소유구조를 만들어낼 것이다. 로봇은 물건을 생산할 뿐 아니라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에너지는 물론이고 다양한 소비활동까지 할 것이다. 물건이 물건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사회가 올 것이다. 이것이 가능할 것인가.
‘오웰의 법칙’은 시도해 볼 수 있는 새로운 기술은 반드시 시도될 것이라고 말한다. 시도해 볼 수 있는 것이 있는 한 과학기술자는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그것이 과학기술이 발전해 온 과정이었으며 앞으로의 발전과정이다. 지금 과학기술의 발전속도는 너무 빨라져 다른 사회 부문이 이를 따라잡기가 벅찬 상태다. 그러므로 과학기술을 슬기롭게 다스리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이 될 것이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선택을 해야 한다. 모험적이지만 새로운 과학기술로 삶이 윤택해지는 신세계에서 사는 것이 하나고 이 자리에서 우물쭈물하다 그저 그렇고 그런 사회에서 사는 것이 또 다른 하나다. 지금은 이 사회의 지도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미지의 과학기술과 그것이 그려낼 미래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부터 제대로’라고 말하고 싶다.
◆김선화 대통령 정보과학기술보좌관 seonhwa@president.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