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아시아 북방에 살던 유목민은 자연숭배의 강한 전통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흉노·돌궐·선비·부여·고구려 등 우랄알타이어족은 하늘과 땅을 천지신명으로 섬기고 해와 달은 일월성신으로 섬겼으며 바람의 신과 비의 신도 신화에 많이 등장했다. 어릴 때 동네에서는 마을 한가운데 서 있는 큰 나무나 산 위에 있는 큰 바위도 영혼을 가져 인간과 교감을 가지고 길흉에 영향을 미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왔다. 산에 사는 산신령이나 물속에 있는 물귀신 이야기도 많이 들어왔다. 토별가에서 토끼와 거북이, 우렁각시 설화에서의 우렁이 등 작은 미물을 의인화한 이야기도 많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또 본래 천산산맥 부근의 건조지대에 거주했다고 알려진 인도 아리안족이나 그리스인, 게르만족도 강한 자연숭배 전통을 간직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스신화에서는 만물을 의인화해 인간의 모습으로 그리고 있다. 자신의 모습에 반해 수선화가 돼 버린 나르시소스나 신을 피하다 월계수가 된 요정 등의 이야기를 우리는 재미있게 읽었다. 만물의 윤회사상에서는 만물을 인간과 동일시하는 면모를 볼 수 있다.
자연숭배는 사물을 인간과 같이 영적인 존재이며 뛰어난 능력을 지닌 것으로 보고 이를 숭배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자연숭배는 애니미즘·샤머니즘과 함께 원시종교의 하나로 간주돼 아직 종교가 발달하지 않은 고대에 성행했으나 과학과 문명의 발달과 함께 사라졌다고 하지만 우리 생활 주변에는 아직 이러한 자연숭배의 흔적은 많이 남아 있으며 어쩌면 우리 본성에 내재해 있을 수도 있다. 어릴 적 자주 가던 할아버지 집 뜰 안에 있던 대추나무와 오동나무는 친구처럼 다정하게 느껴졌다. 난을 좋아한다는 친구는 매일 집에서 키우는 난과 대화를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우리 주변에 있는 사물은 우리 생활의 일부일 수밖에 없고 이러한 사물이 친구처럼 다정하게 여겨지는 것은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 아닐까. 과학적으로 보면 사물은 아무런 감정이나 생각이 없고 다만 이를 보는 사람이 스스로 느끼는 것뿐이라는 설명이 맞을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의 감정은 사물을 무생물이 아니라 감정을 가진 사물로 느끼게 하고 이는 우리의 삶을 더욱 풍요하게 할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정보통신이 조금씩 해결해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사물에 감정을 주기 위해 센서를 부착하고 생각을 하게끔 작은 칩을 부착하며 사람과 교감할 수 있는 통신기능을 갖게 한다면 우리가 사물과 교감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온도·습도·광학 등의 센서를 갖춘 난이 사람이 가까이 다가오면 “오늘 날씨 참 좋았어요. 그런데 목이 말라요” 하는 말을 걸어올 수도 있을 것이다. 할아버지 집 뜰 안의 대추나무가 정말로 “오랜만이구나. 왜 지난 여름에는 찾아오지 않았니?” 하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가장 예쁘니” 하고 물으면 대답하는 거울도 나올 수 있을 것이다. 나무 껍질에 글자를 새겨 놓지 않아도 내 말을 모두 기억하고 있다가 말해주는 나무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일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은 RFID/USN 기술이 기반이 될 수 있다. 아직은 초보적인 수준이지만 사물에 부착돼 인간과 통신할 수 있게 해준다. 아직은 제한된 분야의 센서가 있지만 다양한 분야의 정교한 센서가 개발돼 인간의 감정과 같이 미묘한 감정을 나타내줄 수 있을 것이다. 과학의 발전과 함께 미개한 것으로 여겨 잃어버린 것 같았던 소중한 것을 과학의 힘으로 다시 찾게 될지 모른다. 어릴 적 소중했던 꿈을 이제는 찾을 수 없는 지나간 일이 아니라 다시 살려 우리의 한 부분으로 만들어 삶을 더욱 풍요하게 할 수 있는 날을 기다려 본다.
◆김원식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 회장 wskimmic@par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