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이라는 단어가 있다. 우리말로는 ‘어떤 분야에서 오랫동안 종사해 기술이 뛰어나거나 노련한 사람’으로 ‘숙련가’ ‘전문가’로 표현할 수 있겠다. 그러나 단순히 단어의 뜻만을 볼 것이 아니다.
얼마 전 택시로 이동하던 중의 일이다. 나이가 지긋하신 기사님의 택시에는 훈장 같은 10년 무사고 배지가 운전석 옆에 자리 잡고 있었다. 나는 무심결에 “기사님 운전 잘하시나 봐요”라고 질문을 던졌다. 그때 기사님께서 “잘하긴 무슨. 무사고는 운전을 잘해서가 아니예요. 항상 방어운전, 안전운전을 해서 그렇지”라며 쑥스러운 듯 웃으며 답을 하셨다. 또 내가 아는 지인은 10여년간 아파트 등 대형 건물 외벽 도색 일을 하고 있다. 그 사람은 작업이 예정되면 작업일 2∼3일 전부터 술도 안 마신다고 한다. 사고가 어느 순간, 어떻게 일어날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아주 작은 부분부터 신경을 쓴다는 것이다.
앞에서 소개한 두 사람은 눈감고도 일할 수 있다고 하는 베테랑이다. 그러나 그들이 그 분야에서 베테랑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단지 오래했기 때문이거나 잘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안전의식이 기본에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안전의식의 중요성은 연구실 현장도 다르지 않다. 우리의 우수한 이공계 인력이 사소한 실수나 안전의식 미흡으로 실험 중 부상을 당하거나 심지어 목숨까지 잃는 안타까운 사고가 대학과 현장에서 종종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안전의식은 어릴 때부터 습득해 몸에 배여야 한다. 그러나 우리 현실에서 안전의 문제는 항상 우선순위에서 밀려 교육과 훈련이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더욱이 이런 교육은 우리의 생활을 위한 직접적인 필수사항이 아니므로 자발적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따라서 연구실 현장에서도 인명 존중을 제일로 하는 안전의식이 형성될 때까지는 국가가 주도적으로 안전교육을 강력하게 실시해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주무 부처인 과기부에서도 연구실 안전의 중요성을 인정, ‘연구실안전법’을 제정해 2006년부터 시행하고 있고 올해에는 연구실 안전환경 기반구축사업의 일환으로 전국순회 ‘연구실 안전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이 교육은 광주를 시작으로 11월 30일까지 대전·부산·서울 4개 권역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교육 중 만난 대학의 안전담당 교직원은 대학실험실의 학생은 실험이 일상생활이 돼버렸기 때문에 그들이 사용하는 실험기자재나 물질이 얼마나 위험하며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모른 채 실험을 실시해 왔다며 그날의 교육이 안전의식의 중요성을 다시금 되새길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고 했다. 안전 교육을 이수한 다른 교육생의 의견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안전교육 이수가 법적 의무임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교육 참가율은 높지 않다. 다 아는 내용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혹은 시간이 없어서라는 이유로 교육 참가를 꺼리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안전은 아무리 강조하고 점검하고 돌아봐도 부족하다. 충분한 안전지식을 보유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시간이 없더라도 안전교육에 참가해 다시 한 번 연구실 안전을 상기해 봐야 한다.
연구실은 21세기 과학한국을 이끌 우리의 젊고 유능한 인적자원이 활동하고 있는 곳이며 우리의 성장동력을 일궈낼 훌륭한 연구성과물이 탄생하는 중요한 곳이다. 하지만 동시에 각종 화약약품 및 실험 기계기구에 의한 사고 등 실험 중 뜻하지 않은 일이 발생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다시 한 번 강조하는 바지만 안전은 그 무엇보다 우선시돼야 한다. 기업 혹은 정부출자 연구기관이든 대학 등의 교육기관 연구실이든 훌륭한 연구성과는 안전에서 시작된다는 생각을 기본의식에서부터 철저히 해야 한다. 이제 제도적인 면은 마련됐다. 연구원 본인 스스로, 또 연구실 종사자 모두의 안전의식 고취와 안전관리를 위한 작은 실천만이 남은 것이다.
이영순 서울산업대학교 에너지환경대학원장 lysoon@snut.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