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가트렌드]대선과 UCC

 최근 대선을 앞둔 미국과 한국에서 UCC가 주목받고 있다. 이에 따라 인터넷 캠페인 양상도 크게 변화하고 있다. 종전에 후보가 일방적으로 만든 웹사이트에 유권자를 끌어들이는 방식에서 벗어나 점차 유권자가 직접 정치콘텐츠를 생산하는 온라인 공간으로 찾아가는 방식으로 전환하고 있다. 인터넷 캠페인이 후보자 중심에서 유권자 중심으로 바뀌고 있는 셈이다.

 요즘 미국 대선은 그야말로 ‘웹2.0 선거’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다양한 웹2.0 기술이 선거과정에 적극 채택되고 있다.  블로그·소셜네트워크 사이트(마이스페이스·페이스북 등)·동영상 공유사이트(유튜브)·가상현실(세컨드라이프)·매시업(구글맵) 등이 대표적이다. 이 중에서도 유튜브의 정치적 영향력은 막강해 거의 모든 후보가 유튜브 동영상에서 유권자와 소통하고 있으며 최근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인터넷 동영상 기반의 대선토론회가 열리기도 했다.

 그런데 우리나라 대선은 어떠한가. 지난 2002년 대선에서는 세계 최초 ‘인터넷 대통령’의 등장, 오마이뉴스의 ‘시민기자’와 같은 온라인 시민저널리즘의 출현, ‘노사모’와 같이 정당조직에 버금가는 최초의 온라인 정치인 팬클럽의 등장 등 유례 없이 성공적인 온라인 정치참여 사례가 세계적으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당시에 비하면 대선을 눈앞에 두고 있는 시점치고는 온라인상의 유권자 정치참여는 그다지 활발하지도 다양하지도 않은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2002년의 역사적 경험이 기존의 전통적인 정치집단에 흡수되면서 낡은 방식의 정치동원 구조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퇴색돼 간다는 느낌이다. 인터넷 기술의 진화에 따라 온라인상의 다양하고 창의적인 정치참여도 눈에 띄게 증가하게 마련인데 여전히 기존 유력한 정치엘리트가 만들어 놓은 홈페이지와 팬클럽 사이트를 중심으로 웹1.0 기반의 낡은 현실정치 구조를 그대로 투사하는 방식으로 고착화되는 양상이다.

 이처럼 UCC를 통한 시민참여가 크게 위축된 이유는 무엇일까. 일차적인 이유는 시민과 유권자의 자유로운 표현과 자발적 참여를 일정하게 제약하는 현행 선거법 규정을 비롯해 일부 정치권과 언론의 강력한 규제 담론 때문일 것이다. 이 같은 UCC 규제는 지난 2002년 대선에 대한 정치적 반작용의 결과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네티즌의 UCC 생산방식과 과정의 근본적인 불신 구조에 기인한다고 하겠다.

 UCC를 통해 표출되는 사적 영역의 온라인 콘텐츠가 공적 영역으로까지 확산됨에 따라 자유로운 정치적 표현의 수단을 제공해주는 측면도 존재하지만 UCC 생산과정에서 저작권 침해·명예훼손·프라이버시 침해·유해정보·유언비어·정보조작 등과 같이 온라인 콘텐츠의 사회적 책임의식을 크게 약화시키는 부작용에 기존 제도권의 우려가 상당히 크다는 것이다. 얼마 전 ‘여중생 성폭행 동영상’ 등 이른바 ‘낚시성’ 동영상이 커다란 사회적 문제가 되었던 것처럼 UCC의 생산과정에는 신뢰와 책임성의 문제가 여전히 남아 있다.

 그렇다 해서 마냥 네티즌 탓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쩌면 그 같은 ‘이용자 책임론’은 기존 제도권 정치행위자의 책임회피론일 수도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용자 책임론으로 가장한 소극적 책임회피론이나 일방적 규제담론이 아니라 이용자가 UCC 생산과 소비과정에 민주적 책임성을 스스로 제도화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배려하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UCC의 사회적 성격에 걸맞은 제도화 방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UCC의 정치·민주적 효과는 결코 자동적(automatic)이지 않은 법이다. 사회·정치적 성격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이를 선진화된 민주주의 제도를 위한 아키텍처로 디자인하는 노력을 기울일 때만 그 합리적 효과가 발현된다.

 UCC가 보편·일상화될수록 IT와 정치, IT와 민주주의 사이의 관계는 더욱 긴밀하게 상호작용하면서 현실 제도의 변화를 압박할 것이다. 과거에도 그랬듯 대선과 같은 중요한 정치적 계기는 웹2.0 기술에 대한 시민의 정치적 이용과 적응을 더욱 촉진할 것이다. 이는 IT가 산업적 경제적 발전의 원동력으로서뿐만 아니라 정치·민주적 선진화의 중요한 기반으로도 작용할 수 있음을 함축한다. 특히 웹 환경의 기술·제도적 진화는 유권자로 하여금 더욱 현명한 방식으로 정치과정에 관여하게 만들 것이다.

◆이원태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 wtlee@kisd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