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한국형 황금 구속복

[ET단상]한국형 황금 구속복

 토머스 프리드먼은 ‘렉서스와 올리브’에서 세계화 시대에 선진국이 되기를 원하는 나라는 ‘황금 구속복(golden straitjacket)’이라고 일컫는 특정한 경제정책에 맞게끔 스스로를 변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황금 구속복을 입고 싶은 나라는 정부 조직의 규모 감축, 규제 완화, 무역·외환 자유화, 독점 철폐, 국영 기업의 민영화, 지식재산권 강화 등을 달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프리드먼에 따르면 새로운 세계화 경제에서 성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오직 이것뿐이라고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과거 선진국 역사를 보면 미국은 1988년 이전까지 국외 출판물 저작권을 인정하지 않았고 스위스는 1907년 독일의 협박에 못 이겨 특허에 화학적 발명을 포함시켰고 1978년에야 물질 특허를 인정하기 시작했다. 독일은 영국의 상표 도용을, 미국은 영국의 저작권을 마음대로 사용했었다. 또 필립스회사는 1891년 네덜란드에 특허법이 없는 기회를 틈타 토머스 에디슨에게서 차용한 특허를 기초로 전구 생산업을 시작했다.

 최근 미국은 미키마우스 보호법을 제정해 법인의 제작물은 95년, 제약업은 특허권을 14년에서 22년으로 늘렸다. 영국의 발전은 보호무역과 유치산업보호로 이뤄졌고 미국 또한 영국의 강요를 거부하고 유치산업보호전략으로 경제를 일으켰다. 흔히 유치산업하면 독일의 리스트를 떠올리지만 사실 유치산업보호를 가장 먼저 주장한 사람은 미국의 해밀턴이었고 리스트는 해밀턴의 아이디어를 차용했을 뿐이다.

 이렇듯 선진국에서는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는 필요할 때면 황금 구속복을 마음대로 고쳐왔기에 황금 구속복은 그들의 과거경험과는 다른 허구적 논리적인 체계에 불과하다. 선진국 진입을 했으니 무역개방을 하는 것이지 개방을 했으므로 성공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 과거 외국인 투자를 억제한 핀란드가 노키아라는 기업을 키움으로써 성공한 예는 외국인 투자에 대한 현명한 규제가 무조건적 개방보다 낫다는 점을 보여준다. 재정 건전성 달성과 저인플레가 개발도상국에는 어울리지 않는 목표인데도 IMF 같은 국제기구가 이를 강요함으로 인해 여러 가지 문제점이 야기되고 있는 현실이다.

 결국 황금 구속복이 만능이 아니기 때문에 그 나라의 경제나 기술발전 형태에 따라서 적당히 맞춰야 한다. 과거 IBRD 등 해외 기관의 권고를 받아 선진국과 역할 분담을 했다면 아마 일본은 주요 수출품이던 견직물의 원료인 뽕나무를 재배하고 있었을 것이고 한국은 여전히 농업이나 경공업국으로 주변부에 자리 잡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보호육성을 구실로 지나친 규제는 오히려 산업발전에 장애가 된다. 그동안 논란의 와중에 휩쓸려왔던 IPTV의 사례가 좋은 예다. 만시지탄의 감은 있지만 내년부터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차세대 유망 서비스의 하나인 IPTV가 도입되는 등 통신과 방송이 융합되는 미디어 환경의 변화에 대응한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삼성경제연구소에 따르면 한국의 IT분야 진입규제를 영·미 수준으로 낮춘다면 설비 투자가 6.2%포인트 증가한다고 하면서 적절한 국내의 ICT정책전환 요구를 경청할 때라고 한다. 최근 뉴욕타임스는 올해 IT분야 2개의 빅 뉴스로 애플의 아이폰과 구글이 이동전화 소프트웨어 표준을 공개 개발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구글은 새로운 개방형 소프트웨어 플랫폼(Android)을 오픈핸드셋얼라이언스(OHA) 등과 공동 개발, 궁극적으로 휴대형 컴퓨터와 유사한 통합된 전화기인 스마트폰 생산을 목표로 하는 등 숨가쁘게 변화하고 있다. 이렇게 변화하는 세계적 환경에 대응하기 위한 국가적 차원의 새로운 규제 틀을 마련해야 한다. 이제는 IT산업의 한국형 황금 구속복이 절실히 필요하다. 황금 구속복을 전면 재검토해서 현재의 수직적 규제를 수평적 규제로 통합시키는 등 한국형에 꼭 맞는 크기의 옷을 내놓을 때다.

 신명난 연구와 기업 활동을 할 수 있는 황금 구속복이 만들어진다면 독일 벤츠와 일본 미쓰비시 자동차에 수출하는 현대의 쎄타엔진·포스코의 파이넥스 공법·조선의 육상건조공법 등 세계 최고의 성과를 내는 우수한 국민이 있기에 우리나라 ICT 분야에서도 제2의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 같은 기업이 탄생할 날이 그리 머지않을 것이다.

◆기초기술연구회 이사장 유희열 hyyu@krcf.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