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미래의 기술로 잇는 과거와 현재

 요즘 바쁜 업무 일정에도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만들기 위해 맘먹고 일찍 귀가하는 날을 만들곤 하는데 그때마다 아내에게 싫은 소리를 종종 듣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아내와 TV 리모컨을 두고 쟁탈전을 벌이기 때문이다. 그 동안 전유하다시피 해온 채널 선택권을 양보해야 하니 아내로서는 반갑지 않을 수밖에 없다.

 최근 젊은이와 여성을 위한 내용 일색이었던 TV 드라마에 사극 바람이 거세다. 삼국시대 초기부터 조선시대까지를 아우르는 시대 배경에, 판타지 사극부터 남북합작드라마까지 형식도 다양하다. 덕분에 최근에는 중장년층 남성도 밤 10시면 TV 앞에 모이게 된다고 한다.

 한때 프로그램 편성표에서 멸종되다시피 한 사극의 이 같은 화려한 부활은 우리 역사를 향한 사회적 관심의 증가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사극 열풍 초기의 고구려 드라마는 중국과 대등하게 겨뤘던 역사를 다룸으로써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 측면이 강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단순히 자랑스러운 부분만을 강조하기보다는 그간 역사의 뒤안길에 가려져 있던 존재에 시선을 돌리거나 현재를 비추어 반성할 수 있는 소재를 선택하는 등 드라마에서 역사를 다루는 방식이 다양해졌다. 일반 국민이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이 넓어지고 깊어졌기 때문이다.

 더욱 성숙한 역사 의식을 갖게 된 것은 바람직한 일이나 한편으로는 아쉬운 생각도 든다. 역사와의 만남의 접점에 있는 유물·유적의 관리가 그렇다. 지난달에도 문화재청과 경찰이 전국의 박물관·사찰 등에서 문화재를 절취한 전문 절도단과 불법거래자를 검거해서 3000점이 넘는 문화재를 회수했다.

 회수한 건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그에 앞서 이렇게 많은 물품이 도난·도굴당했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아직 발굴이 완료되지도 않아 역사적 평가조차 받지 못한 유물이 도굴되는 사례도 허다하다. 이렇게 도굴되면 회수율이 0%고 개인이나 정부가 관리를 하는 문화재의 도난 후 회수율 역시 30%에 머무르는 수준이다.

 인간이 자신의 과거를 토대로 현재와 미래를 영위하듯이 개체로서의 국가나 민족에게도 과거, 즉 역사는 커다란 의미를 갖는다. 따라서 어느 국가나 공동체든 자신의 역사를 더 자세히 알고 싶어하며 알아야 한다. 유물·유적과 문화재는 문자 기록만으로 메울 수 없는 현재와 과거의 간격을 좁혀주는 단서다. 우리의 과거를 더 생생히 볼 수 있는 열쇠로서 보다 사실적이고 객관적인 역사 인식을 위해 필요한 요소다.

 새로운 유물·유적이 발굴되면 그 시점에만 반짝 언론에서 다뤄질 뿐이고 지속적인 관심과 체계적인 관리는 찾아보기 힘들다. 민·관에서 관리하는 문화재 역시 지능화되는 절취 수법에 비하면 그 관리 수준이 허술하다. 이는 결국 예산 및 인원 부족 등 현실적인 문제 때문이다. 10월에 도굴당한 경남의 고대 가야 유적지는 48만여㎡의 고분군을 단 두 명의 관리인이 담당하고 있었다고 한다.

 여러 모로 부족한 현실을 탓하며 체념하는 것 외에 소중한 유물과 문화재가 사라지는 것을 막을 길은 없을까. 나는 IT에서 답을 찾았다. 유적과 박물관의 도굴·도난 방지시스템부터 유물과 문화재를 체계적이고 과학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각종 시스템에 이르기까지 IT를 활용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소요되는 예산과 인력을 크게 절감할 수 있다.

 일례로 일부 박물관에서 도입하고 있는 RFID 기반의 유물관리 시스템을 들 수 있다. 이 같은 시스템을 도입하면 수장고에 보관 중인 문화재에 전자태그를 부착해 문화재 관련 정보는 물론이고 입·출입 내역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보관 유물의 훼손이나 도난에 즉각적으로 대응하게 된다.

 과거는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이다. 그리고 지금 전 국민적으로 역사의 거울을 ‘사극’이라는 모양의 틀에 끼워 바라보고 있다. 이 순간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이 거울을 꼼꼼히 닦아 과거와 현재를 잇는 데 우리가 가진 미래의 기술 ‘IT’를 현명하게 사용할 때다.

◆김영규 에스넷시스템 전무 k248@snetsystem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