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서울 세운상가.
지난 40년 영욕의 세월은 말 그대로 국내 전자상가의 역사다. 녹지공간 조성을 위해 내년부터 철거에 들어가는 이곳은 우리나라 전자상가의 효시기 때문이다. 세운상가는 지난 1968년 ‘불도저’로 유명한 김현옥 서울시장이 국내 최초의 도심 재개발 사업으로 탄생시킨 주상복합 건물이었다. 8∼17층짜리 대형 빌딩 여덟 개로 만들어져 당시로선 국내 최대이자 유일한 전자제품 도소매 상가였다. 지금도 가업을 물려받거나 40년 가까이 한곳에서 일하고 있는 전자제품 상점이 300개 이상에 달한다.
하지만 세월의 힘은 무서운 법. 점차 도심 개발이 가속화하면서 세운상가는 노후화된 건물에 빈 점포가 늘어났고 주요 상권은 다른 곳으로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1980년대에 들어 용산역 인근에 전자상가가 몰리기 시작하면서 전자상가의 지형도는 서울 종로와 용산, 양대축으로 변화됐다. 특히 용산 전자상가는 터미널상가·나진상가 등이 잇따라 들어서면서 세운상가의 규모를 넘어 1990년대 중반까지 국내 전자 유통시장의 메카로 커갔다.
그러나 10년 넘게 이어진 용산 전자상가의 아성은 IMF 구제금융 이후 우리나라 IT 산업이 부흥기를 맞이하면서 또 한 차례 변화를 겪게 된다. 대표적인 흐름이 집단 전자상가의 시대가 도래했던 것이다. 지난 1998년 프라임산업은 서울 강변역 인근 쓰레기 하치장 부지를 개발하면서 국내 집단 전자상가의 원조인 테크노마트를 세웠다. 과거 용산이나 세운상가가 수많은 상인이 밀집해 구멍가게식으로 영업해왔던 것과 비교하면 고급스러운 초고층 빌딩에 문화공간까지 겸비한 전문 쇼핑몰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어 1990년대 말부터 하이마트와 전자랜드 등 전문 양판점이 전국 곳곳에 점포를 확대하며 서울에 집중된 전자 상권을 광역화하기 시작했다.
지난 10년 가까운 기간 동안 하이마트와 전자랜드는 집단 전자상가와 더불어 국내 전자 유통시장의 핵심축으로 성장해왔다. 이후 지난 2004년 용산역 철도청 부지에 들어선 ‘스페이스나인(현 아이파크몰)’은 지리적으로는 용산 전자상가의 상권이지만 테크노마트에 이은 두 번째 집단 전자상가로 관심을 모았다. 한때 국내 전자 유통 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기도 했던 집단 전자상가는 이제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올 연말부터 테크노마트와 부천 소풍이 그동안 미개척지로 남아 있던 수도권 서남부 지역에 진출함으로써 또 한 번 전성기를 꿈꾸고 있는 것이다.
서한기자@전자신문, hs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