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국경 없는 기상분야, 한국기상청의 역할

[ET단상]국경 없는 기상분야, 한국기상청의 역할

 기상에는 국경이 없다. 인간이 그어놓은 국경에 상관없이 공기가 넘나들기 때문이다. 그러한 공기의 변화가 전 세계 기상청의 관심 대상이고 이웃나라의 협력 없이 자국 하늘만 바라보고 할 수 없는 게 기상예보다.

 최근 환경오염 문제를 남의 나라 공장 탓하며 간섭하려 들고 세계 평화를 위해 만들었다는 UN의 활동도 핵·경제·테러·식량 문제 등 이해득실에 따라 첨예하게 대립한다. 그러나 종교·사상·민족 간의 갈등으로 수많은 ‘피의 전쟁’을 치렀던 역사적 사실과 달리 기상 분야의 협력은 매우 신사적이다. 오래 전부터 이념이 다른 국가 간에도 관측한 기상 자료나 기술을 아무런 조건 없이 나누어 왔다.

 자기네 영토에서 발생한 집중 호우·가뭄·폭설·한파 등 여러 기상 현상은 다른 국제적인 이슈와 달리 감출 것도 부끄러울 것도 없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기상 현상은 잘나고 못남이 없는 있는 그대로 자연 현상일 뿐이다. 기상의 매력이 여기에 있다.

 이러한 범세계적인 협력의 가운데에는 UN 산하에 13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세계기상기구(WMO)라는 국제기구가 있다. 188개국의 회원국이 참여하고 있는 WMO는 우리나라가 1956년에 가입한 이후 많은 도움을 주었다. 과거에 우리 형편에 살 수 없는 고가의 장비를 제공해주고 여러 분야에서 전문 인력의 교육과 발전한 기상 기술을 선진국으로부터 지원받는 데 도움을 주었다.

 그런데 세상이 달라졌다. 이제는 WMO의 회원국 중 여러 개발도상국은 한국의 발전 모델을 벤치마킹하고 있다. 선진국도 한국의 기상 인프라와 선진 기술을 인정하게 됐다. 188개 WMO 회원국 중에서 첨단 예보기술인 수치 예보를 할 수 있는 기반과 능력을 갖춘 11개국 중에 한국이 들어 있다. 국력이 그대로 드러난다. 어느새 우리나라가 ‘받는’ 자리에서 ‘주는’ 자리로 바뀐 것이다.

 기상청은 1999년부터 개발도상국을 대상으로 교육 훈련 프로그램을 운영해 왔으며 교육 분야와 초청 국가를 점차 확대하고 있다. 지금까지 교육한 분야는 우리의 강점인 정보통신 기술·기상 응용·기후 예측·수치 예보·위성기상 분야 등이며 수혜국가는 올해만 해도 30여개국에 이른다. 선진국에서 받았던 도움을 이제 개발도상국에 주게 됐다.

 이러한 한국기상청의 성장을 바탕으로 지난 5월 스위스에서 개최된 제15차 총회에서 우리나라가 집행이사국에 처음으로 진출했다. 한국기상청이 전 세계 인류의 화두로 떠오른 이상 기상으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하는 각국 기상청을 발전하게 하려고 앞장설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다고 인정한 것이다.

 WMO 내에서 37개 집행이사국은 정치적으로 말하면 지역구를 대표하는 국회의원과 비유할 수 있다. 집행이사국의 기상청장은 WMO의 모든 사업을 토의하고 결정하는 데 참여한다. 올해 집행이사국에 선출된 것을 계기로 한국은 일본·중국보다 늦게 진출했지만 아시아 지역의 이익을 대변하면서 WMO에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

 WMO의 운영에 들어가는 예산은 회원국이 내는 분담금으로 채워진다. 여기에 우리 한국이 내는 액수가 188개국 중에서 11위에 이른다. 그만큼 물질적으로나 기술적으로나 기여도가 커진 것이다. 그러니 우리 한국에 거는 회원국의 기대는 크다. 이러한 마당에 WMO의 운영 예산으로 봉급을 지급하는 사무국의 정식 직원에 한국 기상전문가가 많이 참여해야 할 것이다. 국장급이건 과장급이건 간에 여러 분야에서 전문가로 일할 기회가 있고 우리 기상청은 이를 위해 훌륭한 인재를 추천해 놓은 상태다.

 집행이사회라는 의결 기구뿐만 아니라 집행부서인 사무국에도 많은 인력이 진출해야 할 것이고 이러한 인재가 늘어나 활발하게 활동하면 반기문 UN 사무총장이 탄생하듯 미래에는 WMO 사무총장이라는 최고의 자리에 한국인이 선출될 날도 올 것이다. 우리의 높은 수준의 IT와 유능한 인재의 역량이 더해지면 세계 기상계를 선도하는 한국이 될 것이다. 기상은 ‘네 것 내 것’이 없는 전 세계가 하나다.

◆정순갑 기상청 차장 dass@km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