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가트렌드]네트워크 사회의 그늘

[메가트렌드]네트워크 사회의 그늘

 인터넷·금융 사회운동의 네트워크, 심지어 테러리즘 네트워크에 이르기까지 네트워크는 이 시대의 대표적인 키워드가 되고 있다. 그래서 현대사회를 가장 잘 표현해주는 개념 중 하나도 이른바 ‘네트워크 사회’다. 그동안 다소 추상적이고 경제적인 함의가 컸던 ‘세계화’의 개념이 이제 자신의 내용을 잘 담고 있는 이름 하나를 부여받은 것이다.

 역사적으로 자본주의가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를, 제국주의 시대가 총독과 식민지 백성이라는 전형을 창조했듯이 네트워크 사회도 그에 고유한 형상을 만들어내고 있다.

 한쪽에 글로벌 금융 전문가, 글로벌 유목민으로서의 전문직 종사자, 글로벌 사회운동가가 있는가 하면 다른 쪽에는 글로벌 네트워크의 부산물인 실업자와 경제난민 그리고 이 세계 질서에 대한 거부를 상징하는 테러리스트가 존재하고 있다. 오늘날 세계는 이렇게 글로벌 네트워크에 접속한 집단과 그럴 기회를 갖지 못한 집단으로 양분돼가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이질적이고 적대적이지만 두 진영은 동일한 시대의 징표를 가지고 있으니 그것은 바로 ‘자유’다. 물론 이들이 지닌 자유의 내용은 서로 다르다. 이를테면 전자가 민족·국가·영토라는 근대의 뿌리에서 해방된 자유를 구가하고 있다면 후자는 이 뿌리에서 뽑혀 정주가 허용되지 않아 정처없이 떠돌 수밖에 없는 존재를 의미한다.

 글로벌 금융 전문가·글로벌 유목민으로서의 전문직 종사자·글로벌 사회운동가 등이 지난 1960년대 미국과 유럽에서 나타난 반문화와 해방적인 사회운동의 21세기 버전이라면 실업자·경제난민·테러리스트 등은 유대인·쿠르드인·아르메니아인·집시 등과 같이 근세기 초 국민국가 형성 과정에서 자신의 나라를 가지지 못해 격리되고 배제돼 부유하던 사람들의 후예다.

 금융 네트워크의 힘을 여실히 보여준 금융위기와 구조조정, 경제의 글로벌화는 지구상의 수많은 사람을 가족·직장공동체·국가·지역공동체와 같은 전통적인 보호장치에서 ‘자유’롭게 해주었다.

 마르크스가 얘기한 봉건적인 굴레에서 자유로워진 프롤레타리아는 근대적인 굴레에 다시 매이게 됐지만 근대적인 굴레에서 자유로워진 이 시대의 프롤레타리아를 받아줄 곳은 아직 마련되어 있지 않다.

 팔레스타인이나 미국-멕시코 국경에 건설되고 있는 분리장벽이 상징적으로 보여주듯이 자국에서도 다른 나라에서도 이 배제된 자들에 대한 장벽은 더욱 높아만 가고 있다. 그런데 사회의 지배적인 사고는 이렇게 자유롭지 못한 다수의 객관적 현실과 괴리되어 있다.

 수시로 우리는 성공 신화와 글로벌 커리어를 듣고 ‘박지성’과 ‘한비야’를 꿈꾼다.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에 사는 사람은 인터넷과 위성안테나로 유럽과 미국에 접속돼 있다. 그리고 자신도 영상으로 전해지는 낙원의 일원으로 간주하게 된다.

 부르디외는 사회의 지배적인 문화는 그 사회의 지배계급의 문화라고 하면서 문화와 의식의 계급성을 얘기했다. 일부 사회와 계층의 관심과 세계관이 모든 이의 열망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실현할 수 없는 열망은 신화나 환타지에 대한 열광으로 변형된다.

 신화는 당대 지배계급이 바라본 그들의 이해관계가 반영된 현실이다. 피지배계급은 자신이 이해할 수 없고 통제할 수 없는 현실 세계에서 지배계급이 만든 신화로 도피한다. 신화에서 다시 현실로, 예외적인 사람의 성공신화에서 누구에게나 가능한 길로의 회귀가 절실히 요구된다. 이런 점에서 네트워크 사회의 초기 단계는 자본주의 초기와 많이 닮아 있다.

◆엄한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 eom3597@hallym.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