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마지막입니다. 둔필에 경황도 없어 마감 때마다 부담스러웠지만 마지막 칼럼이라 하니 한 편에 아쉬움도 남습니다. 누구나 떠날 때에는 가장 소중하고 의미 있는 말을 남기려고 합니다. 그래서 저도 후배 CEO들에게 어설픈 경험이나마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기업현장에서 깨우친 것은 기업의 목표는 ‘대박’이 아니라 ‘생존’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꿈을 버리라는 뜻은 아닙니다. 대박을 위해 창업했더라도, 설령 잭팟을 잇달아 터뜨리고 있더라도 결코 생존의 중요성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기업도 단명하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경제부 기자를 하던 20년 전부터 기업들에 관심을 가졌는데, 오로지 한탕을 노리는 CEO 치고 장수하는 일은 보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매스컴을 화려하게 장식하며 선망의 대상이 됐다가 오래지 않아 불꽃처럼 스러져가곤 했습니다. 아마도 쉽게 떼돈을 벌어 영구히 잘나갈 방법은 하늘 아래 없을 듯합니다. 만약 예외를 보았다면 그 기업에는 아마도 전생에 테레사 수녀처럼 훌륭한 업을 쌓은 CEO가 있을 테지요.
생존은 대박보다 힘들기도 합니다. 매킨지컨설팅이 대기업 평균수명을 조사한 결과 1935년에는 90년이었는데 1955년에는 45년으로 반토막이 났고, 1995년에는 22년, 2005년에는 15년으로 계속 평균수명이 단축됐습니다. 2010년에는 10년 이하로 줄어들지도 모릅니다. 1980년대 전 세계 경영자의 필독서였던 톰 피터스의 ‘초우량기업을 찾아서’에 소개된 초우량기업 46개사 가운데 현재 살아남은 곳은 6개사에 불과합니다. 그러고 보면 2005년 베스트셀러 ‘블루오션’에 등장했던 성공사례들은 얼마나 레드오션을 피해 오래갈 수 있을는지요.
얼마 전 10여년 흑자경영 끝에 부도위기에 몰린 기업인을 만났더니, CEO에게는 낙원이 없을까 하며 한숨을 내쉬더군요. 구약성서 창세기를 보면 아담과 하와는 낙원에서 영원히 풍요로울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담은 금단의 열매 선악과를 먹었고, 야훼의 저주를 받았습니다.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기업들도 낙원에 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과거 독재정권하 폐쇄적 시장에서는 정경유착만 잘해도 정부가 든든한 보호막이 돼줬습니다. 그렇지만 기업도 실락원했습니다. 개방경제 체제로 넘어오면서 기업들은 시장에 내동댕이쳐졌고, 이후 제 힘으로 수고하고 땀을 흘려야 성과를 낼 수 있게 됐습니다.
불행하게도 시장의 저주는 야훼의 저주보다 더 냉혹합니다. 그저 밭 갈듯 열심히 일한다고 안심할 수 없습니다. 시장은 전장(戰場)이며, 약육강식의 원칙이 지배하는 정글입니다. 전쟁에는 체급도 없고, 휴전도 타협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전장은 시시각각으로 변합니다.
생존의 비법이 있기는 합니다. 찰스 다윈은 “살아남는 종(種)은 가장 강하거나 가장 똑똑한 것도 아니며, 변화에 가장 잘 적응하는 종”이라고 갈파했습니다. 얼마 전 국내 연구팀이 공룡 발자국을 조사해 발표한 것을 보았는데 한반도에 살았던 티라노사우루스 같은 수각류 공룡도 뒤꿈치를 들고다녔다는 것입니다. 생태환경이 열악했으니 정글의 강자라 해도 한가하게 걸어다닐 수는 없었던 모양입니다. 공룡시대에는 화산 폭발이 빈번했던만큼 나름대로 적응하려고 노력했던 것이겠지요.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시장에 가장 잘 적응하는 것일까요. 제 일천한 경험에 비춰보면 적응의 기본은 긴장감인 것 같습니다. 경각심과 절박함이며, 기민함과 치열함인 듯합니다. 사력을 다해야 함은 물론입니다. 저는 요즘 이렇게 자문합니다. 나는 전쟁 중인가(Am I at war?). 그리고 직원들에게도 물어봅니다. 당신은 전사(戰士)인가(Are you a warrior?).
친기업적이라는 대통령이 등장했습니다. 앞으로 시장환경은 좀 나아질까요. 희망은 미래의 싹이라고 하니 기대해볼 밖에요. 어찌됐든 후배CEO 여러분, 장수하시기 바랍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요.
주태산 맥스무비 대표이사 joots@maxmovi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