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관치(官治)와 민치(民治)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실리콘밸리가 한창 커 가고 있을 즈음, 미국 정부는 무슨 지원이든 해주려고 이렇게 물어보았다. 그러나 실리콘밸리에서 온 답변은 의외였다. “Leave us alone (규제도 도움도 싫으니) 우리 하는 대로 내버려 두세요.”

 실리콘밸리는 스탠퍼드 대학의 실용주의적 철학과 프레더릭 터먼 교수의 산학협력 비전제시로 출발하게 됐다. 터먼 교수는 HP를 비롯, 졸업생들의 비즈니스를 도와주고 산업단지를 조성해 기업체를 유치했다. 이 단지가 1982년에 ‘스탠퍼드 산업공원’이 됐고 이후 미국 총생산의 10%를 차지하는 대표적 집적지로 성장했다. 정부지원에 익숙한 우리 처지에서는 민치(民治) 역량이 부럽기만 하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정부조직 개편에 착수했다. 많은 조직 통폐합이 있을 것이며 규제위주의 기능도 대폭 손질할 것이라 한다. 그간 정부 기능에 대한 논의는 끊임없이 계속돼왔다. 나라마다 역사적 배경, 경제발전 정도, 민치 역량 등이 달라 정부개입 정도에 차이가 있게 마련이지만 우리는 아직 관치는 많고 민치는 적다. 이번 기회에 시장기능이 대폭 활성화되기를 기대한다. 한편 당연히 국가가 제공해야 하는 서비스인데도 ‘큰 정부’의 부담으로 공무원 증원을 하지 못하는 때도 있다. ‘작은 정부’는 공무원 수보다는 정부기능의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

 정부의 대민관계는 규제·지원·자율영역으로 나눌 수 있다. 이 영역의 재조정을 위해 어떤 원칙과 기준을 적용해야 할 것인가.

 첫째, 규제는 가능한 한 유인제도로, 사전규제는 사후규제로 전환해야 한다. 규제는 예산이 수반되지 않아 쉽게 도입하는 경향이 있으나 한번 도입되면 축소나 폐지가 어렵다. 민간부문의 ‘규제순응 비용’이 과도함을 감안할 때 규제의 절대량을 줄이는 것이 최우선 과제다. 다만 규제할 최소한의 영역은 투명성과 예측 가능성이 있도록 하고 철저한 집행으로 규율을 확립해야 한다. 호주 캔버라 시는 개인 주택에 심는 나무 크기와 색깔까지 규제하지만 불평이 없다. 규제가 투명하고 일관성이 있어 따르는 데 어려움이 없기 때문이다.

 둘째, 정부지원의 효율을 높여야 한다. 규제보다는 유인책인 지원을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지원은 결국 조세부담으로 돌아오고, 지원에 안주하면 경쟁력을 저해한다. 부처별 중복 지원의 문제를 해결하는 근본적인 대책은 유사기능의 통폐합이라 할 수 있다. 중소기업 지원은 정당화되는 일이 많지만 지원의 난맥상이 두드러진 분야다. 지원제도가 150여개로 너무 복잡해 ‘눈치 빠른 사람이 수혜자’라는 부정적 평가도 있다.

 셋째, 민간자율을 확대해야 한다. ‘시장’은 인간이 만든 제도 중에서 가장 위대한 발명이라고 한다. 시장이 경제발전의 ‘수훈 갑’이라는 데 이론이 없다. 시장에는 경쟁과 승패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아직 초보단계지만 기업 스스로 윤리경영·환경경영·기부문화 등 지속가능 경영과 장기적 상생협력을 확산시켜 가고 있다. 반드시 관치가 아니라도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기업은 사회적 책임 이행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민치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민치역량이 뒷받침돼야 한다. 규범위반이 계속 되는 한, 자율적 통제가 작동되지 않는 한 정부개입의 유혹은 계속된다. 빌 게이츠의 ‘창조적 자본주의’는 이윤만이 유일한 목표가 아니다. 어렵고 소외된 곳을 챙기는 신자본주의다. 정부기능 조정으로 민치의 확대가 국민의 성숙된 역량과 어우러져 ‘따뜻한 시장경제’로 한국 자본주의를 아름답게 꽃피울 날을 기다려 본다.

◆김종갑 하이닉스반도체 대표  jongkap.kim@hynix.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