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 인수위원회의 어젠다 중에 꼭 들어가야 하는데 빠진 것이 두 가지가 있다. 출산과 공대 기피 현상에 대한 대책이다.
아시아는 전 세계에서 인구가 가장 조밀한 지역이지만 가장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핵심은 인력이다. 향후 30년간 우리나라는 주로 중국·일본·인도와 경쟁하게 될 것이다. 그중 가장 적은 인구를 가진 한국의 전략은 철저하게 이들 나라와 차별돼야 한다.
그냥 과학기술 투자를 늘리는 것으로는 안 된다. 돈과 인력 규모로 승부를 겨루겠다는 생각은 다윗이 골리앗에게 레슬링을 하자는 것과 같이 우매한 일이다. 인력 양성에도 전략이 필요하며 그 핵심은 공학이다. 공학은 새로운 시장과 시스템을 만들어내는 설계 기술이다. 국부의 주력은 공학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 공학은 순수과학이나 인문과학보다 더 구체적이고 실용적이다.
지금 우리나라 과학기술 정책의 폐단은 인기 영합주의와 단기 성과주의다. 과학기술은 이공계 학생에게 장학금을 주고 공무원의 이공계 자리를 늘려 주고 벤처기업에 정부 지원금을 준다고 해서 진작되는 것이 아니다.
당장의 성과를 위한 임기응변보다 장기 포석이 필요하다. 공학은 자연과학과 다르다. 과학기술자를 평가하는 데 활용하는 논문 수, 인용 빈도, 유명 저널 게재 등은 주로 순수과학에 적용된다. 공학자의 평가는 좀 더 실용적이며 직접적이고 포괄적이어야 한다.
한국에는 부품 소재 기업체가 많이 있지만 메모리를 빼면 일본의 부품업체와 경쟁이 안 된다. 일본의 메모리 아성을 우리나라가 깰 수 있었던 데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 가운데 정부의 역할이 컸다. 지금 각자 따로 떨어져 고전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시스템 반도체 산업, 임베디드 소프트웨어 산업을 키우는 핵심은 시스템 산업과의 연계며 그 열쇠는 정부가 쥐고 있다. 그런데 정부는 과기부·산자부·정통부로 나뉘어 개별 연구사업에 투자하는 데 그쳤다.
시스템 반도체 사업으로 국가의 부를 창출하는 데 성공한 대만이 투자한 돈의 규모는 연간 약 1000억원 규모. 우리나라가 시스템 반도체 개발에 부은 돈의 규모도 이보다 별로 적지 않다. 그러나 결과는 판이하다. 대만은 시스템 반도체가 나라의 틀을 잡았고 이제 그 여력으로 메모리·디스플레이까지 넘보고 있다.
우리나라는 시스템 반도체뿐 아니라 소프트웨어와 시스템 산업 자체가 모두 큰 문제를 안고 있다. 휴대폰·자동차·셋톱박스·e가전 등 시스템 산업은 나름대로 잘나가는 것 같지만 부가가치가 작고 부품의 국내 확보율이 극히 낮다. 소프트웨어는 내장형 소프트웨어로 나아가는 것이 살길이다. 국내의 시스템 반도체 기업은 그야말로 맨땅에 머리 박는 식으로 일하고 있다.
스펙을 알아야 칩을 만들 터인데 스펙을 얻는 것 자체가 힘들다. 시스템·시스템 반도체·임베디드 소프트웨어 이렇게 세 가지를 동시에 살리는 길은 그들 간의 시너지를 살리는 것이며 그것은 바로 공용 플랫폼을 만드는 것이다.
플랫폼은 무엇인가. 시스템 기업과 부품업체 간에, 학교와 기업 간에 서로 공유하면 이익을 얻을 수 있는 모든 것은 다 공유하는 것이 좋다. 그게 플랫폼이다. 각 IP 블록 간의 통신 프로토콜, 버스 구조에 대한 설명 자료, 설계·검증 흐름도, Q&A, 국제표준 동향과 해설자료, 강의 자료, 이 모든 것을 효과적으로 공유하고 지속적으로 보강해갈 수 있어야 한다.
플랫폼을 만드는 것은 정부만이 주도할 수 있으며 동시에 정부가 할 유일한 역할이다. 지금 우리의 숙제인 세 가지 IT 핵심 산업의 요소, 즉 시스템·시스템 반도체·임베디드 소프트웨어라는 새는 하나의 돌로 잡아야 한다. 중요 영역인 모바일·e홈·e카 영역별로 시스템 업체와 반도체 설계업체, 소프트웨어 업체가 모여 앉아 플랫폼을 만들어 활용해야 한다. 그것이 정부가 미래 산업의 진작을 위해 할 가장 중요한 일이다.
◆경종민 KAIST 전자전산학과 교수kyung@ee.kaist.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