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플레이업계의 상생전략으로 주목받았던 삼성전자와 LG필립스LCD의 장비 교차구매가 결국은 불발로 끝났다. 삼성과 LG 측이 지난 12월 중순 각각 8세대 라인에 대한 장비 발주에 나섰으나 최근까지 양사 모두 기존 협력사만 공급사로 선정한 것으로 확인됐다. 8세대 라인은 유사한 기술규격과 크기를 채택, 교차구매의 효과가 클 것으로 기대됐는데 초반부터 차질이 빚어졌다. 디스플레이협회의 역점 사업 중 하나였고 양사 사장이 작년 10월 교차구매에 합의해 놓고도 실현시키지 못했다는 게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오랜 관행을 깨뜨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됐다.
작년 10월 양사가 교차구매에 합의하면서 디스플레이업계는 묘한 흥분에 휩싸였다. 대기업과 협력업체 간 주종관계가 다소 해소되고 중소 협력업체는 연구개발에 집중 투자해 국제경쟁력을 높일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이 높았다.
하지만 이번에 8세대 라인의 장비 투자에서도 기존의 관행을 답습함으로써 국내 디스플레이업계는 상생협력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실패했다. 대만의 LCD업체가 국내 장비업체에서 비교적 자유롭게 장비를 구매하는 데 비해 국내 LCD업계는 기존 관행에 안주,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린 셈이다. 이럴 바에야 교차구매 얘기를 처음부터 꺼내지 않는 것이 오히려 현실적인 접근 아니었을까 하는 회의감마저 든다.
그나마 7세대 라인에서 일부 상대방 업체에서 장비를 발주한 것을 위안으로 삼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7세대 라인에서 이뤄진 교차구매는 납품받은 장비가 각각 1대씩에 불과하고 이마저도 테스트 수준에 그쳐 본격적인 상생협력의 성과로 보기에는 미약하다.
이번에 삼성과 LG 측은 본격적인 교차구매가 이뤄지지 못한 것을 놓고 장비 발주의 시급성과 비자금 사태 등을 원인으로 꼽았다. 워낙 짧은 시간에 8세대 라인에 대한 투자를 추진해야 했기 때문에 기존 협력업체에서 납품받는 것이 여러 모로 편리하다고 판단한 듯하다.
하지만 최근 글로벌 시장의 추세를 감안할 때 교차구매는 앞으로도 계속 추진해볼 충분한 가치가 있다. 이미 생산량에서 우리를 추월한 대만업체는 원가 및 기술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국내 장비업체에서도 제품을 구입하고 있으며 일본 업체는 연합전선을 형성해 국내 디스플레이업계를 위협하고 있는 상황이다. 교차구매가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모를 리 없는 양측이 작년에 교차구매를 추진키로 합의한 것은 그만큼 상황이 급박하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었다.
국내 업체가 국제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선 기왕에 합의된 교차구매를 보다 적극적으로 실현하려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 삼성과 LG가 솔선수범하는 게 중요하다. 향후 추가 발주물량에는 교차구매의 가능성을 열어두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