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이 어느 한 시점의 사건이라기보다 완전히 하나 됨을 이뤄가는 과정이라고 볼 때 옌볜과의 상호교류 15년간 경험은 앞으로 다가올 남과 북의 미래를 내다볼 중요한 모의실험이라 할 수 있다. 옌볜과 직접 교류가 한국 사회에 끼친 가장 큰 변화는 중국 동포의 한국 진출이다. 이른바 3D업종이라 불리는 일터에는 어김없이 중국 동포가 일하고 있다. 언어가 서로 통한다는 측면에서 다른 외국인 노동자에 비해 선호하고 있는 것이다.
통계에 따르면 이렇게 한국에서 일하는 중국 동포의 수가 25만명이 넘는다고 한다. 지난해 노무송출(노동력 수출) 수입으로 옌볜에 송금된 금액은 11억달러에 달하며 이는 이 지역 GDP의 32%나 차지하는 엄청난 규모로 옌볜 지역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런데 이 현상을 조금만 깊게 생각해 보면 옌볜 지역에서 발생하는 심각한 사회문제를 예상할 수 있다. 25만명이나 되는 노동 가능 인력이 한국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은 부모없이 자라나는 옌볜의 많은 어린 자녀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들에게 부모가 송금해 주는 돈은 단순한 노동의 대가라기보다 부모와 자식 간에 나눠야 할 사랑을 포기한 대가기도 하다. 부부가 따로 떨어져 지내야 하는 이주 노동의 특성상 이혼율도 급증하고 있다. 결국, 옌볜 지역이 경제적으로는 잘살게 됐고 한국은 3D업종에 필요한 노동력을 얻었는지 모르지만 과연 두 사회가 상생과 협력으로 함께 추구해야 할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가고 있는지는 심각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지금 옌볜에서는 한국과 새로운 관계를 정립할 중요한 실험이 시작되고 있다. 중국 옌지시 정부는 지난해 11월 한중 SW산업단지 건설계획안을 발표했고 한국의 SW 아웃소싱 산업을 유치하기 위한 적극적인 전략을 펼치고 있다. SW 아웃소싱 기지로써 옌볜은 실제로 몇 가지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첫째, 옌볜은 한중 이중언어 구사능력을 갖춘 기술 인력을 양성할 최적지라 할 수 있다. 중국 동포의 최대 밀집지역이며 중국 내에서 한국어가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유일한 지역이다. 둘째, 중국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여러 가지 정책을 통해 적극 산업 유치를 지원하고 있다. 중국 여타 지역이 외자기업에 주는 특혜를 점차적으로 줄여가는 것과 대조적인 현상이다. 세째, 우수한 인적자원을 양성하기 위한 민족대학인 옌볜대학이 있으며 한중 협력 성공사례인 옌볜과기대는 우수인력 배출과 더불어 한국과 해외에서 실무경험이 있는 100여명의 이공계 교수가 포진돼 있다. 그동안 산업적 기반이 없었기 때문에 많은 우수한 인재가 옌볜지역을 떠났지만 한중 SW 단지가 조성된다면 오히려 연어의 회귀현상과 같이 좋은 기술인력이 돼 돌아올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옌볜의 가능성을 실제로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당장 눈앞의 이해득실을 따지기보다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관점에서 한국 기업의 참여가 요구된다.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 옌볜지역과 한국의 상생 협력을 위해 치뤄야 할 통일비용이다. 그러나 이 비용은 두꺼운 얼음을 깨서 아무도 발견하지 못한 블루오션을 찾는 생산적인 비용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결국 이러한 도전과 헌신의 경험은 남북한이 상생과 협력의 정신으로 온전함을 이루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경험이 되리라 믿는다.
김한수 옌볜과기대 교수(옌볜자치주 IT산업발전 전문가 자문위원) kimhs@ybust.edu.c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