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김진형 카이스트 전자전산학부교수-디지털 앉은뱅이

[ET단상]김진형 카이스트 전자전산학부교수-디지털 앉은뱅이

 이명박 당선인의 선거 공약에는 우리나라 IT산업 현황을 ‘디지털 절름발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낮은 활용도, 부족한 콘텐츠, 경쟁력 떨어지는 SW, 열악한 중소기업 상황을 지적하는 말이다. 아직 공식 발표는 없지만 정보통신부의 기능을 분해해 행정자치부·문화관광부·산업자원부·방송통신위원회로 이관한다는 것이 대세인 듯하다.

 이 와중에 지금까지 SW 산업의 주무 부서였던 SW진흥단의 업무는 문화부로 이관한다고 한다. SW 산업 및 기술의 특성에 비추어 볼 때 이러한 결정은 깊은 우려를 갖게 한다.

 지난 10년간 정통부는 SW산업의 주무 부서였으나 부서의 위상이 상대적으로 낮고 부처 스스로 통신 중심의 정책만을 강조해 왔기 때문에 국가CIO로서의 위상을 확보하지 못했다. SW를 활용한 모든 산업의 생산성 향상과 신규 서비스 창출 등은 어느 한 부처의 업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부처가 관계되는 업무임에는 틀림없다.

 7% 성장을 목표로 하는 이명박 정부에서는 컴퓨터·SW에 투자해야 한다. 2000년 이후 미국의 GDP 성장에 가장 공헌이 지대했던 IT 세부 분야는 컴퓨터·SW로서 IT 공헌의 83%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로도 증명된다.

 선진국의 3분의 1 수준인 우리의 노동생산성을 높이려면 IT 이용서비스가 중요한데 우리의 IT서비스 노동생산성 기여율은 15% 수준으로 선진국의 80% 수준에 비해 매우 낮다.

 SW의 세계 시장은 반도체 시장의 30∼40배에 이르는 큰 규모고 매출액의 30% 이상이 순이익이 되는 황금알을 낳는 산업이며 신규 기업의 창출이 활발한 역동적인 산업이다.

 SW의 4대 분야인 IT서비스와 패키지 그리고 디지털 콘텐츠·내장형 SW 분야 가운데 시장 규모가 가장 큰 IT서비스는 SW 산업의 꽃이자 국가 경쟁력의 핵심 요소다. 금융산업의 경쟁력이나 물류산업의 효율성이 정보시스템의 성능에 직결된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다. 정부의 효율성과 작은 정부의 구축도 정보시스템의 활용을 통한 프로세스의 개선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패키지 SW 분야는 선진 외국기업과 경쟁이 격심해 국내 기업의 성공사례를 찾기 힘드나 여전히 벤처 기업인의 대박을 향한 ‘희망’이다. 첨단 산업장비·무기체계 등에서 사용되는 내장형 SW의 능력과 규모는 우리나라의 기술력 그 자체다.

 디지털 콘텐츠 분야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로 영역을 잡아가고 있지만 SW의 전체 시장 규모의 비중이나 확산 가능성으로 볼 때 SW 산업을 대표하기에는 아직 역부족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SW 산업 정책을 문화부에 맡기는 것은 매우 걱정스럽다. SW 산업정책은 인력 양성을 비롯, 지식재산권 보호 등 생태계 조성, 신기술 연구개발 및 기술확산 등의 추진을 위해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된다.

 현 정통부에서 직원 몇 명을 문화부로 배치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더욱이 문화부의 방송·언론 등의 미디어 정책과 영화·게임·음악 등의 문화·관광정책, 나아가 국정홍보 속에서 SW 정책이 함몰돼 버리고 말 것이다. 더구나 문화 정책이라는 것이 산업정책과는 거리가 있지 않은가. 절름발이를 고치려다가 앉은뱅이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새 정부에서는 SW 관련 업무를 어디에선가 통합해야 한다. 정부의 행정 서비스 프로세스 개선 및 전자정부 업무까지 포함하면 더욱 효과적이겠지만 그 외의 SW 업무만이라도 통합돼야 한다. 정통부를 유지할 수 없다면 SW 산업의 모든 업무를 산업부에 맡기는 것이 더 논리적이다. 산업부·문화부 사이에 어디엔가 경계를 두고자 한다면 아날로그 콘텐츠, 즉 음악·공연·미술·영화의 문화진흥과 이의 디지털화를 통한 산업화 사이에 둘 수 있다.

 SW 관련 업무를 여러 부처에 나누게 되면 청와대에 국가CIO를 두어서 IT 정책을 통합 조정하는 자리가 있어야 한다. 지난 10년과 같이 SW 관련 업무를 분산시켜 누구나 나서고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사태는 최소한 막아야 한다.

 김진형 KAIST 전자전산학부 교수 jkim@cs.kaist.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