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프로야구 두산베어스의 강타자 김동주 선수가 계약을 마무리했다. 1년간 총액 9억원이다. 그는 당초 4년 계약에 62억원을 제시받았다. 이미 심정수 선수가 삼성으로 옮기면서 4년간 60억원을 챙긴 전례가 있다. 샐러리맨은 그저 부러울 따름이다. 프로야구에 자유계약선수(FA) 제도가 도입되면서 이른바 초대박 스타들이 잇따라 탄생했다. 9년간 한 팀에서 뛴 선수는 자유계약을 할 수 있다는 규정이다. 농구 등 여타 프로 스포츠 스타도 1년 몸값이 수억원에 달한다. 같은 날 화제를 모은 또 다른 기사가 있다. 부산에 들어설 초고층 주상복합 아파트의 펜트하우스 분양 열기다. 40억원이 넘는 이 펜트하우스에 내로라하는 연예인들의 청약이 예고됐다. 이 정도면 대한민국도 선진국이다. 스타의 몸값과 수입은 그 사회의 경제 선진성과 비례한다.
불편하지만 즐거운 상상을 해본다. 과학자, 이공계 교수나 연구원에게도 FA 대박이 터지면 어떨까. 무슨 무슨 과학자가 4년간 총 60억원짜리 연봉계약을 했다는 기사가 실릴 수는 없을까. 5년간 총액 100억원을 지원키로 하고 해외에서 활약 중인 교수나 연구원을 초빙하는 것은 또 어떤가. 40억원짜리 펜트하우스에 살고 있는 일반 과학자나 연구원, 개발자의 탄생은 불가능인가. 황우석 신드롬을 제외하면 한국에서 대중 스타에 필적할 만한 몸값을 챙기는 교수나 연구원은 그림의 떡인가.
상상의 모티브는 중국이 제공했다. ‘과학으로 국가를 발전시킨다’는 과교흥국(科敎興國)을 내건 나라다. 최고 명문 칭화대는 세계적 성과를 내는 교수100명에게 연봉 100만위안을 지급한다. 국민소득 200만원 수준 나라에서 우리돈 1억3000만원에 해당한다. 해외 두뇌들에겐 연구비까지 지원한다. 개인당 한 해 평균 30만달러를 프로젝트별로 투입한다. 스탠퍼드나 아이비리그 출신 젊은 과학자, 연구원들이 ‘고국행’ 보따리를 기꺼이 꾸린다.
몸값은 가장 예민하다. 노동의 사회적 경제적 가치가 정확하게 반영된다. 이공계 교수나 연구원조차 “내 자식만큼은 공대 안 보낸다”고 대놓고 이야기한다. 비전은 프레젠테이션으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지금 선배의 모습이 10년 후 ‘나의 비전’이다. 윤종용, 황창규를 들먹이는 것은 강요다. 그들의 성공은 과학과 연구가 밑바탕이지만 비즈니스적 성취가 더 컸다. 기초분야 순수학문을 연구하는 사람에게 모조리 비즈니스에 나서라고 내모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똑똑한 이공계 젊은이들이 주목하는 것은 현실이다. 기업이 조금만 어렵다면 연구소부터 폐쇄한다. 출연연조차 비켜가지 않는다. 혹독한 구조조정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연봉이라 해봐야 1억원이 되면 언론에 보도될 정도다. 노벨상을 수상했던 러플린 전 카이스트 총장이 40만달러 연봉을 받았다고 구설에 올랐다. 대전의 수많은 출연연 기관장 연봉을 다 합쳐야 삼성전자 등기임원 한 명에도 못 당한다. 서울 공대 교수도 사정은 비슷할 것이다. 가진 것이라곤 사람밖에 없는 나라다. 그 원천자원인 이공계 출신들에게 ‘이슬만 먹고살라’면 가당치도 않다.
때마침 새 정부 조직개편이 발표됐다. 과기부·정통부가 해체된다. 과학자·연구원은 “마지막 자존심까지 상했다”고 분통이다. 대전은 벌써 구조조정 괴담으로 뒤숭숭하다. 이공계 우대는 말로만, 정책으로만 이뤄질 수 없다. ‘삶의 현장’이 바뀌지 않는 한 이공계 문제는 ‘위기’에서 ‘절망’으로 전이된다. ‘즐겁지만 불편한 상상’은 언제나 씁쓸하다.
이 택 논설실장 etyt@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