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주파수 정책을 시장 기능에 맞춰 재배치하고 신규 주파수를 확보해 경쟁을 활성화하겠다는 얘기가 들린다. 정부 조직개편에 따라 어떻게 변화할지 모르지만 최근 2세대(G) 이동통신 시장이 3G, 4G로 빠르게 전환돼 조만간 추가 주파수가 필요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적절한 시점으로 판단된다. 차기 정부에서 이러한 계획이 차질없이 추진되길 기대한다.
이와 관련, 영국 통신규제기관인 오프콤(Ofcom)이 최근 발표한 주파수 개편방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영국은 6500만명 가량의 2G 이동전화 가입자를 보유한 가운데 1위 사업자인 ‘O2’를 비롯한 4개 사업자 시장점유율이 25% 안팎으로 경쟁이 매우 활성화되어 있다. 많은 나라에서 영국의 규제 정책 사례를 벤치마킹하는 등 이동통신 규제 선진국으로 인정받는다.
오프콤은 EC주파수위원회의 ‘2G용으로 할당한 900㎒와 1800㎒ 대역 자유화 방안’을 검토하라는 결정에 따라 경쟁활성화와 주파수의 효율적 활용이라는 두 가지 정책목표를 세웠다. 이에 근거해 △기존 사업자 기득권을 인정하고 용도를 자유화하는 1안 △기존 사업자 기득권을 인정하되 제3자 로밍의무를 부여하는 2안 △기존사업자 주파수 일부를 회수해 공정 분배하고 잔여 주파수를 기존 사업자가 자유롭게 쓰는 3안 △모든 주파수를 회수해 재배치하는 4안을 검토했다.
오프콤은 역사적으로 저대역 주파수가 사업자별로 불균등하게 할당된 현황을 깊이 고려한 것으로 전해진다. 4개 2G 이동전화사업자 가운데 선발사업자인 ‘O2’와 ‘보다폰(Vodafone)’이 저대역(900㎒) 주파수를 보유했고, 후발사업자들에게는 고대역(1800㎒)을 가지고 있었던 것.
일반적으로 1㎓ 이하 저대역 주파수는 고대역 주파수보다 투과성·굴절성 등 물리적 특성이 좋아 적은 비용으로 양질의 통신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따라서 주파수 대역 간 투자비 차이가 매우 크다.
오프콤의 분석에 따르면 저대역(900㎒) 주파수는 사업자당 인구밀집지역에서 2100㎒ 주파수보다 기지국 약 1만300개를 절약할 수 있다. 금액으로는 17억파운드(약 3조원)를 절감하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시외에서도 기지국 2700개를 줄일 수 있고 비용으로는 약 2억5000만파운드를 절감할 수 있다고 한다.
오프콤은 결국 900㎒ 저대역 주파수에 대해 전면적으로 용도를 자유화하거나 로밍의무를 부여한 뒤 용도를 자유화하는 방안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궁극적으로 주파수를 회수한 뒤 재배치하는 게 최적이라는 것이다.
특히 900㎒ 대역에 로밍의무를 부여하는 방안은 사업자의 망 투자 유인을 감소(다른 경쟁사업자가 망을 같이 쓰기 때문)시키고 고대역을 사용하는 사업자가 900㎒ 사업자가 투자하는 만큼 투자할 경우 비용을 크게 높여놓을 것으로 예측했다.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이와 달리 고대역인 1800㎒ 대역은 공정경쟁상 문제가 없어 기존 주파수를 그대로 보유하되 용도를 자유화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봤다.
이 같은 결정은 저대역 주파수 보유 여부에 따라 경쟁력 격차가 심각하게 좌우된다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기존 2G에서 3G, 4G 등으로 진화하는 흐름에 있어 저대역 주파수 공정배분의 중요성을 감안한 결정이다. 영국뿐만 아니라 프랑스·독일·일본 등 주요 선진국에서도 같은 취지로 저대역 주파수 공정배분 정책을 속속 도입하고 있다.
영국 사례는 우리나라에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우리나라도 저대역(800㎒)을 한 사업자가 독점하면서 주파수 공정분배 논란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최근에는 800㎒에 대한 로밍 요구가 고개를 들기도 했다. 영국 사례를 참고한다면 저대역 주파수는 주파수 효율적 활용과 경쟁활성화를 고려해 ‘회수한 뒤 재배치’하는 게 바람직한 대안이라고 하겠다.
주파수는 국가의 유한한 자산이자 공공재이다. 따라서 한정된 국가 자원은 공정성·투명성·합리성의 원칙하에 공정하게 분배하는 것이 타당하다. 또 모든 국민에게 골고루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정책이 추진되어야 한다.
윤상오 단국대 교수, yuliss@dankoo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