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IT 트렌드를 선도한 인물’ ‘거대 통신사업자의 하수인’. 마이클 파월 전 미 연방통신위원회(FCC) 위원장에 대한 미국 언론의 엇갈린 평가였다.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의 아들이기도 한 그는 30대 초반에 FCC 위원으로 선임됐고 중반에 위원장에 올랐다. 자칭 ‘기술광’인 이 ‘야심찬’ 젊은 변호사는 혁파 수준의 규제완화와 투자 유도를 천명했고 실천했다. 미국의 미디어와 통신·IT 전반을 총괄하는 막강한 FCC위원장으로 뚜렷한 족적을 남긴 셈이다. 그 과정에서 반대편으로부터는 시장과 경쟁만을 강조한 친기업적 인물로 규정됐다. 공익성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다는 비판에 갇혔다. 그의 대답은 태연했다. “FCC라는 보호막이 없어도 시장의 힘에 의해 산업합리화는 이루어진다.” “디지털격차는 현실이다. 혁신적 기술이 전파되려면 부유층이 먼저 사용하는 것은 당연하다.” 파월의 뒤를 이은 인물 역시 30대의 법률가 케빈 마틴 현 의장이다. 전임자와 정책적·철학적 차이는 거의 없다. 심지어 신문방송 겸영이라는 ‘50년 난제’조차 교차진입 허용이라는 카드로 해결했다. 두 사람 모두 부시대통령의 선거 및 정책참모였다.
한나라당이 마침내 방송통신위원회 안을 선보였다. 인수위의 작품이다. 미국 FCC를 벤치마킹한 것이다. 벌써부터 방통위의 위상과 관할 문제로 온통 시끌벅적이다. 독임제 부처가 어쩌니, 독립성이 어쩌니 하는 격렬한 논쟁이 예고됐다. 우선은 밥그릇 싸움이 시작됐다. 어느 쪽이 헤게모니를 잡느냐는 이해 당사자들에게 사활적 이슈다. 기존 방송위에 무게중심이 쏠린다면 IT기업들과 정통부 관료들은 이른바 찬밥 신세가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떨고 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 자본을 앞세운 통신, IT기업의 목소리에 방송의 공익성과 독립성은 설 자리를 찾기 어렵다. 물론 양쪽의 화합적 결합과 시너지도 예상된다. ‘정치 감각’에 탁월한 방송위와 고도로 전문화된 정통부 관료들의 능력이 FCC보다 뛰어난 기구를 만들어 낼 가능성이 농후하다. 기구가 뜨려면 오히려 작은 문제가 크게 비화할 수 있다. 신분과 임금이다. 방송위 쪽 인력과 정통부 공무원들의 임금 격차와 고용승계를 어떻게 조율할지 골치일 것이다. 이것은 현실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위원 구성이다. 상임위원 5명의 선임 방식은 FCC와 비슷하다. 키는 독립성과 철학의 확보다. 위원들이야 일정한 당파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 자신을 추천한 세력을 대변할 의무도 있다. 그러나 현 방송위처럼 무조건적인 당파성, 정권 코드에 맞춘 의사결정이 되풀이되서는 곤란하다. IT와 미디어 융합에 대한 전문성 부족도 보완해야 한다. 오죽하면 ‘지상파 방송사의 민원창구’라는 비아냥까지 나오나. 기업친화적 시각을 드러내면 곧바로 ‘역적’으로 낙인찍는 풍토 역시 반드시 개선해야 한다.
새로 구성되는 방통위는 방송위가 아니다. 5명의 상임위원에는 언론은 물론이고 법률가와 통신 전문가, 기업가 출신의 배치가 요구된다. 견제와 균형에 대한 요구다. 미디어의 독립성만큼이나 IT산업의 발전은 국가적 소명이다. 인수합병·독과점 등 시장과 기업의 이해를 재단할 법률가도 필요하다. ‘덕망과 학식을 갖춘 자’를 ‘정치적’으로 배려하는 곳이 방통위라면 차라리 없는 게 낫다. 기왕 FCC 벤치마킹하려면 제대로 해야 한다. 신생 방통위에 ‘전봇대’부터 돌출되면 해소하는 데 5년이 걸린다.
이 택 논설실장 etyt@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