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경제력 세계 10위, 국가 경쟁력 세계 11위, 과학 경쟁력 6위, 기술 경쟁력 세계 7위. 2007년도 우리나라 성적표다. 우리는 70∼80년 산업시대를 거치며 지속적인 성장을 해왔지만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 문턱에서 주춤거리고 있다. 벌써 10여년째다. 최근에 이르러 겨우 환율 덕분에 2만달러를 넘어서는 수준이다. 3만∼4만달러 시대는 쉽지 않아 보인다.
속전속결식 결과 위주의 성장 전략은 이제 한계에 왔다. 변해야 한다. 우리나라도 사회·문화·정서·질서 등이 선진국과 경쟁할 수 있도록 투명하고 효율적인 시스템으로 바꿔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과학기술 분야의 시스템 정비가 중요하다. 타 분야에 비해 복잡하지 않은 과학기술 분야 시스템을 먼저 정비한다면 정부 R&D 투자 및 새 성장동력을 쉽게 찾을 수 있다. 활용도가 높은 기초원천 기술에서 시스템 정비가 이뤄지면 산업 전반에 걸친 큰 파급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국가 경쟁력의 핵심인 과학기술은 최근 거대·융합·전문화되고 있다. 기술과 산업·서비스가 융합하는 동안 우리나라는 부처 간, 분야 간, 조직 간, 학제 간 벽을 허물지 못했다. 안타까운 일이다. 과학기술 분야에서 부총리 체제는 큰 성과를 거뒀다. 부총리 체제 이후 부처 간 벽이 많이 허물어졌다. 부처이기주의가 개선되는 중요한 계기기도 했다.
올해 우리나라 국가 R&D 예산은 10조8423억원으로 GDP 대비 3%대에 이른다. 새 정부는 이를 5%까지 확대하고 이 중 기초원천 기술 예산을 전체 R&D 대비 50%대로 끌어올리겠다고 한다. 국가발전을 위해 반가운 일이며 꼭 이루어지리라 믿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는 있다. 이러한 R&D 예산 규모는 미국 대비 15분의 1, 일본 3분의 1, 독일과 프랑스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현재 우리나라 경제 기반으로는 미국이나 일본 수준으로 전체 R&D 예산을 늘리기가 쉽지 않다. 과학기술 부문 생산성을 강화하는 방안이 중요해진 것도 이 때문이다. 기초 원천 부문의 생산성이 높아지면 응용기술, 산업기술 부문에서 효과는 더욱 커진다.
과학기술 및 R&D 주기는 갈수록 짧아지고 있다. 응용R&D는 6개월도 못 된다. 빠른 R&D 주기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기초·원천 기술 단계부터 응용기술, 상품화와 연계된 R&BD(Research&Business Development)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상품 기획단계부터 마케팅까지 이어지는 개발과정이 R&D 부문에도 적용돼야 한다.
거시적 차원에서는 국가 R&D를 기획·연구·실용화하는 과정을 하나로 묶는 작업도 필요하다. 부처 및 개별주체를 연계하고 기술에 대한 예측과 타당성을 조사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R&D 기획부터 국내외 기술동향, 인력 상황, 산업·시장성, 경제성 등을 분석해 기술 수요자에게 연계해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정부는 이제 각 부처, 연구 주체별로 연구관리 체계를 표준화해야 한다. 연구자의 연구활동이 연계돼 다른 연구자에게 공유되고 연구 성과를 축적해 확산시키는 산·학·연 통합 연구관리 체계가 서둘러 마련돼야 한다. 시스템이 구축되면 연구과제 기획·선정·평가 과정이 투명해져 예산을 절감할 수 있으며 동시에 연구성과 확산이 가능하다.
과학기술 및 국가 R&D 체계의 종합연계는 중요하다. 과학기술 계획이 각 부처와 연계되고 국가 차원의 R&D 관련 상황들이 곧 바로 파악되면 실시간으로 정책에 반영할 수 있다. 국가 R&D 기획 내용부터 상용화하는 과정을 기술 수요자에게 곧바로 연결한다면 새 정부가 고민하는 R&D 투자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기술 수요자가 R&D 과정 곳곳에 투자처를 찾게 되고 결국 민간 투자로 이어져 좋은 상품개발을 하게 된다. 당연히 창업이 촉진되고 고용 창출이 이뤄짐은 물론이다. 세제와 금융 등 각종 지원제도가 부가된다면 상승효과는 더 커질 것이다.
조영화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장 yhcho@kistep.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