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스트의 대학 개혁이 탄력을 받고 있는 것 같다. 이미 지난해 교수들을 대상으로 영년직 심사제도를 도입해 교수 사회에 신선한 충격을 준데 이어 영어 수업 확대, 융합연구 체제 구축 등을 적극 추진함으로써 개혁 작업의 강도를 점차 높여가고 있다. 새해부터는 개혁 2단계 과제로 고위험·고수익 프로젝트 발굴에 적극 나서는 등 방향 전환도 추진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일부 가시적인 성과도 나오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아마 미국 교포 기업인으로부터 카이스트 사상 최대 규모의 기부금을 출연받은 것 아닌가 싶다. 해외로부터 들어온 기부금은 대학의 기초 및 응용연구 역량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다.
국제기구와의 협력도 괄목할만하다. 얼마 전에는 미국 항공우주국(NASA) 에임스 연구센터와 달탐사 위성연구를 공동으로 진행키로 했다. 미 NASA와 공동으로 협력해 달탐사 위성을 공동 개발키로 한 것은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드물다. 성공적으로 진행된다면 우리나라가 우주개발 탐사 및 위성 분야에서 높은 수준의 기술을 축적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최근 사우디아라비아가 2조원을 들여 추진 중인 해외 연구센터의 카이스트 유치 방안도 주목할만하다. 중동 각국이 오일 달러를 앞세워 세계 유수 대학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역내에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대학을 세우는 등 여러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매우 긍정적인 활동으로 평가할만하다.
이처럼 카이스트가 개혁 작업에 온힘을 기울이고 있음에도 카이스트의 앞날은 매우 불투명하다. 이명박 차기 정부가 추진 중인 정부 조직개편에 따라 과기부가 해체되면 기존에 과기부 우산하에 카이스트가 누려왔던 음양의 혜택이 축소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대학 설립 이래 최대 위기에 봉착할 수 있다. 그러나 카이스트가 현재의 위기 상황을 돌파하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렇다고, 과거처럼 정부가 카이스트에 전폭적으로 지원해 주기를 기대하기도 힘든 상황이다. 이미 차기 정부는 대학에 자율권을 대폭 이양하겠다는 방침을 천명한 상태다.
이래 저래 카이스트로서는 위기다. 세계적인 대학으로 도약하기 위해선 대학의 자생력을 높이고 교수 및 학생들의 국제경쟁력을 높이는 수 밖에 없다. 최근 서울대가 수익 사업을 추진할 지주회사 체제의 출범을 선언한 것에서 볼 수 있듯이 국내 대학들은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벌이고 있다. 카이스트 내부 구성원들 역시 이 같은 위기 의식을 공유하고 있을 것이다. IT단과대학 설립을 추진하고 융합연구 체제를 강화하는 것도 이 같은 노력의 일환이라고 믿는다. 대한민국 이공계의 자존심인 카이스트가 많은 대학 가운데 하나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특별한 무엇인가가 필요한 상황이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카이스트 구성원들이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