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과 컴퓨터 기술의 발전이 이끌어 낸 IT혁명은 증기기관의 발명에서 비롯된 산업혁명에 견줄 수 있는 혁명적 변화라 할 수 있다. 산업혁명으로 인류가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발전했던 것처럼 IT혁명은 산업사회를 정보사회로 변화시켰다. 그러나 변화 속도는 시간이 갈수록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빨라지고 있다. 산업혁명이 18세기 중반에 시작돼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변화하는 데는 100년 이상이 소요됐으나 IT혁명은 1970년대 미국에서 시작돼 불과 20여년 만에 전 세계를 정보화시대로 이끌었다.
이렇듯 세계 경제질서가 지식정보사회로 재편된 과정에서 우리의 위치를 입체적으로 조망해 볼 필요가 있다. 경제발전 단계를 △요소투입 주도단계 △설비투자 주도단계 △연구개발(R&D) 주도단계 △금융 주도단계라는 4단계로 구분할 때, 우리는 현재 R&D 주도단계에 정착하는 과정에 있다. 그 과정에서 금융 주도의 세계 경제와 충돌하는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지난해 말 기준으로 세계 1위 한국제품이 121개라는 보도가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한국 1등 제품을 뜯어 보면 절반 이상이 외국산 부품이라는 보도도 있었다. 이는 우리나라의 본원적 경쟁력을 깊이 살펴봐야 할 중요한 지적이기도 하다.
이제는 R&D 경쟁력이 국가 경쟁력을 결정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을 다시 한 번 인식해야 할 때다. 한때 R&D는 현대 경제체제에서 자본투자의 효율성 제고 수단으로 분류, 경제시스템의 외부요인이나 투자의 하부수단으로 간주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지식정보사회로 변화하면서 지식정보 자체의 중요성은 물론이고 부가가치 창출의 기반인 지식정보를 생성하고 다루기 위한 R&D와 엔지니어링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이제 R&D는 경제사회 성장을 이끌어가는 경제시스템의 핵심 내부요인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전문가들도 R&D의 결과로 얻어진 생산성 변화가 세계경제 주기 변화의 주요인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과거 모방형 기술개발의 틀을 벗어나 창조적 R&D를 추구하는 전략으로 전환하고 있다. 반도체 공정기술, 차세대 이동통신 시스템 등 첨단 IT 분야는 물론이고 선박용 대형 디젤엔진 및 드릴십 등의 제조업 분야에서도 R&D에 기반을 둔 세계 1위, 세계 최초 제품들이 매년 증가하고 있다. 또 최근 10년간 국가별 특허등록 건수를 살펴보면 우리나라는 미국·일본에 이어 세 번째로 특허를 많이 등록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우리나라의 R&D 수준이 업그레이드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이러한 성과를 더욱 강화하기 위해 우리의 R&D를 재조명해 보아야 한다.
R&D의 본원적 경쟁력이 기반기술의 펀더멘털에 의해 결정되는만큼 이제 우리는 개발 위주의 R&D를 벗어나 기초연구나 응용연구의 투자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 또 금융 주도단계로 옮겨가기 위한 금융시스템과의 연계 방안도 신중히 검토, 수립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새로운 성장요인이 구현되기 위해서는 정부의 제도적 지원, 기업들의 R&D 투자 의지 강화, 혁신 기술을 사업화하기 위한 금융 시스템 개선 등의 과제를 해결해야만 한다. 이를 통해 지식정보화 사회에서 우리의 미래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산업효율성 증대와 금융 시스템 선진화를 이룰 수 있을 뿐 아니라 금융주도 경제발전 단계로 도약할 수 있는 준비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조정남/SK텔레콤 대표이사 부회장 jnc@skteleco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