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베이징 중관촌의 휴대폰 판매점에 근무 중인 리 종신씨는애플 아이폰 한 대를 내놓는다. 중국은 애플이 아직 아이폰을 공식 판매하지 않는 나라다. 물론 매장 간판 어디에도 아이폰을 판다는 내용은 없다. 그러나 리씨는 “당신이 원하는 만큼 아이폰을 살 수 있다”고 장담했다.
애플 아이폰의 독특한 수익 모델이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다. 13일 비즈니스위크에 따르면, 아이폰 공식 판매 국가는 미국·영국·프랑스·독일 4개국이지만, 아이폰이 유통되는 곳은 브라질·인도네시아·이스라엘·나이지리아·페루·폴란드·러시아 등 100개국이 넘는다. 국가당 이동통신사업자 1곳을 선정, 아이폰 판매권을 독점적으로 주는 애플의 사업 모델이 잠금 장치 해제 기술과 날로 커지는 불법 유통시장(그레이마켓)으로 위협받고 있는 것이다.
◇ 독점 사업자 지위 ‘흔들’ = 체코에 위치한 블라독스는 ‘터보 SIM(Turbo SIM)’카드를 전세계 아이폰 구매자들한테 판다. 당초 모바일 결제용으로 개발된 이 SIM 카드는 AT&T네트워크에서 아이폰이 구동되는 것처럼 인식하도록 조작한다.10명도 안 되는 이 회사에 터보 SIM 주문이 밀려들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그저 입을 다물지 못할 지경”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SIM 카드는 독점 판매권자의 지위를 무색하게 만든다. 애플과 제휴한 이동통신업체에 가입하지 않아도 아이폰의 화려한 기능과 음성 통화까지 자유자재로 쓸 수 있기 때문이다.
통신업계는 아이폰 총판매량의 25%, 적어도 100만대 이상이 그레이마켓에 풀린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레이마켓 성장 배경과 유통 경로도 다양하다. 달러 가격이 급락 중인 틈을 타 미국에서 아이폰을 대량으로 구입, 유럽에 싼값에 팔아 ‘환차익’을 노리는 도매상이 등장하는가면, 중국에선 항공사 스튜어디스들이 1인당 수십 대씩 구매해 중관촌으로 실어나른다. 또 중국 공장에서 종업원들이 아이폰 부품을 빼돌려 재조립한다는 ‘첩보’도 있다. 이들은 아이폰 설계도까지 확보하고 있다.
◇ 남는 것 없다면 이통사의 선택은 = 그동안 각국의 내로란 이통사업자들은 아이폰 독점권을 확보하기 위해 혈안이 됐다.아이폰 가입자가 쓴 데이터 통화료의 일부를 애플과 나눠 가지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아이폰을 쓰기 위해 이통사를 바꾸는 등 경쟁사 고객을 뺐는데 효과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익 모델이 구멍이 생긴 이상, 이통사들도 ‘주판’을 다시 튕겨 볼 수밖에 없다. AT&T는 불법 사용자에 대한 법적 대응도 고려하고 있지만, 힘든 싸움이라는 지적이 많다. 휴대폰 유통 시장의 한 관계자는 “아이폰 그레이마켓은 지속될 것”이라면서 “애플로서는 막을 길이 전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류현정기자@전자신문, dreamsho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