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브프라임 사태? 우리와 상관없다.’
HP의 출발이 좋다. HP는 2008년 1분기(지난해 11∼1월) 순익이 전년 동기 대비 무려 38%나 증가했다고 19일(현지시각) 발표했다. 이에 따라 마크 허드 CEO는 지난 2005년 칼리 피오리나로부터 바통을 이어받은 후 10분기 연속, 시장 기대보다 높은 실적을 발표하는 대기록을 달성하게 됐다.
◇투자가들, 주가상승으로 ‘화답’ = HP 1분기 매출은 애널리스트들의 예상치보다 10억달러가량 많은 285억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13% 이상 증가했다. 순익은 38% 증가한 21억3000만달러를 기록했다. 실적 발표 당일인 19일 HP 주가는 시간 외 거래에서도 8센트가 더 오르는 등 하룻밤 사이에 5% 이상 급등했다. 구글·애플·인텔·시스코 등 내로라는 IT 공룡들이 실망스러운 실적으로 잇따라 주가가 떨어졌던 것과는 대조를 보였다.
◇ HP, 서브프라임 ‘무풍’ = 전문가들은 HP의 실적 비결로 해외 매출을 입 모아 꼽았다. HP는 1분기 매출 중 무려 69%를 해외 시장에서 끌어올렸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부실 사태 여파로 미국인들이 너도나도 허리 띠를 졸라매고 있지만, 해외 매출 비중이 큰 HP에 미친 영향은 적었던 셈이다. 허드 CEO 특유의 ‘짠돌이 경영’도 미국 경기 침체와 맞물려 효과를 톡톡히 발휘했다. 허드 CEO는 지난 3년 동안 1만 개 이상의 일자리를 없애고 사업 비용을 줄였는데 순익을 챙기는 든든한 기반이 됐다. 허드 CEO가 재임 중 HP의 시가총액은 2배로 늘어났다. 덕분에 HP 주주들의 자산은 500억달러 이상 증가했다.
◇ 문제는 프린터 사업 = 분기 실적 발표 콘퍼런스 콜에서 허드 CEO도 자신감이 넘쳤다. 그는 “앞으로도 더 좋은 결과를 내놓을 수 있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HP 실적이 모두 좋은 것만은 아니다. PC사업은 승승장구하고 있지만, 매출 대비 순익이 PC의 2배 이상인 프린터 사업이 주춤하고 있다. 삼성전자 등 경쟁사들의 추격이 거세지면서 1분기 HP 프린터 판매 대수는 2% 이상 감소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올해 HP CEO 4년차를 맡는 마크 허드로서는 새로운 성장엔진을 발굴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에 직면해 있다. 더 이상 비용 줄이기만으로는 성장할 수 없는 시점에 와 있는 것이다. 비즈니스위크는 포레스트 리서치 프랭크 질레트 애널리스트의 말을 인용, “허드는 비용 절감의 귀재라는 별명에 걸맞는 능력을 보여주는 데는 성공했지만 미래의 새 성장엔진을 여전히 발굴하지는 못했다”면서 “올해가 그 시험대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류현정기자@전자신문, dreamsh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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