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부 개편안 윤곽이 드러나면서 며칠 동안은 잠이 오지 않았어요.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야지요.” “이미 상황 종료인데 달라질 게 뭐 있겠습니까?” “아니지요. 부처는 없어지지만 기능은 살아있습니다. 후속 개편작업이 나라와 국민을 위해 바람직한 방향이 되도록 설득도 하고 강조도 해야 합니다.” 엊그제 만난 정보통신부 ‘마지막 장관 유영환’은 여전히 바쁘고 열정적이었다. 사적인 자리여서 다소 잔인한(?) 질문을 던졌다. “내일모레 퇴임인데 진로는 결정하셨나요?” “내 한 몸 챙길 여유가 있나요. 한번은 집사람도 걱정이 되는지 묻습디다. 일단은 푹 쉬겠다고 했지요.”
그날 밤 우연히 ‘미녀들의 수다’라는 TV 프로그램이 눈길을 잡았다. 외국인들이 한국에서 생활하다 모국으로 돌아갔을 때 가장 불편한 점이 무엇인지를 이야기했다. 인터넷과 휴대폰이 으뜸이었다. “한 페이지 띄우는 데 몇 시간이나 걸리고, 툭하면 끊어지니 짜증이 난다”는 것이다. 하기야 해외출장자·유학생·교민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도 비슷했다. ‘현 거주국이 후진국이라 느낄 때’를 묻는 질문에 70% 이상이 인터넷·정보통신 환경을 꼽았다. 응답자는 대부분 미국이나 유럽지역에서 클릭했다. 2008년 대한민국의 정보통신은 공기와 같다. 이 세계 최강, 최고의 환경에 우리는 너무나 익숙해져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하지만 밖으로 나가보면 알게 된다. 오죽하면 ‘미수다’의 외국인 패널들이 콕 찍어 대답했겠는가.
20일 정부조직개편안이 극적으로 타결됐다. 1884년 우정총국으로 시작, 1948년 체신부로 바뀌고 다시 1994년 지금의 형태로 재탄생한 정보통신부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정통부는 IT한국의 신화를 창조한 집단이다. 부처 평가에서는 늘 맨 앞자리를 차지했다. 먹거리를 만들고 원천·응용기술을 개발했다. 모두 맨땅에서 시작한 일이었다.
하지만 정통부를 기억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다. IT를 통한 사회의 통합적, 민주적 발전을 이루는 시대정신의 실현이다.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가장 먼저’라는 캐치프레이즈가 걸렸다. 정보화는 동시에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과 지원으로 이어졌다. 정통부의 파워는 뛰어난 관료와 자금, 우체국에서 비롯됐다. 경제와 산업흐름을 꿰뚫고 있었던 관료들은 정확한 목표를 제시했다. 그들은 규제와 진흥이라는 모순을 능수능란하게 다뤘다. 대기업을 안내하지만 벤처기업을 만들고 키웠다. 한 해 1조원이 넘는 정보통신진흥기금을 조성해 수만개 벤처의 뒷배가 됐다. TDX에서 CDMA·와이브로에 이르기까지 한국형 세계적 기술을 확보하는 데 투입했다. 통신사업자가 성장하면 기금이 늘어났고 그것은 다시 주변부 중소기업과 연구개발 저변이 탄탄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었다. 우체국은 계층 간, 지역 간 격차 해소의 견인차로 거듭났다. 지금도 2800개 우체국 중 55%가 지방에 산재해 있다. 우체국은 지방의 IT센터로 불린다. 인프라에서 교육까지 지역 IT화의 전진기지였다. 중소기업에는 정부조직 최대 정보시스템 수요처로 돈줄 역할까지 한다.
정통부 홈페이지에는 지금도 ‘디지털로 하나되는 희망 한국’이 비전으로 올라 있다. 조직은 뿔뿔이 해체되지만 정책철학과 가치는 이어질 것이다. 경제적·산업적·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고 부추기는 정부의 철학은 이명박 체제라고 다를 것이 없다. IT한국은 이제 새롭게 달려나갈 것이다. 아듀! 정통부.
이 택 논설실장 etyt@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