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택칼럼]퀄컴, 적의 적은 친구인가

[이택칼럼]퀄컴, 적의 적은 친구인가

 퀄컴은 휴대폰의 인텔이다. CDMA 기술을 창시했고 절대자로 올라섰다. WCDMA 시장이 열리면서 노키아 같은 GSM 초강자들까지 퀄컴의 기술을 사용한다. 로열티 역시 꼬박꼬박 바친다. 지식재산권으로 먹고사는 최고 가치기업이다. 창립 20여년 만에 연매출 100억달러를 눈앞에 두고 있다. 영업이익률은 60%가 넘는다. 기술과 특허로 전 세계 통신기업을 무릎 꿇린 퀄컴이지만 최근 잇따라 ‘망신’을 당했다. 브로드컴과의 특허소송에서 패했다. 특정모델, 특정기한이기는 하지만 덕분에 해당 퀄컴 칩을 탑재한 한국 휴대폰의 미국 수출에도 제동이 걸렸다. 노키아와의 승부는 좀 더 아프다. 미국국제무역위원회가 노키아의 손을 들어준 데 이어 델라웨어 법원의 권고대로 양측이 타협점을 찾고 있다. 퀄컴이 제소했지만 별로 건질 것이 없다. 노키아를 비롯한 6개 휴대폰업체는 그간 연 5억달러를 퀄컴에 건냈지만 크로스라이선스 형태로 상쇄될 것이라는 분석이 압도적이다. 우리 기업들은 애증이 교차한다. 노키아로 대표되는 유럽과 일본의 경쟁자들이 퀄컴에 완승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그럼에도 퀄컴의 독점적 특허 지배력에 제동이 걸리는 것을 바라는 심정적 동조도 있다. 하지만 실리는 다르다. ‘퀄컴에 좋은 것이 한국에도 좋은 것’은 아닐지라도 경쟁자들의 원가경쟁력에 한푼이라도 도움이 되는 결과를 바랄 수는 없다. 더구나 노키아 등이 여세를 몰아 한국에 특허 공세를 펼 수도 있다. ‘적의 적은 친구’라는 등식이 성립한다.

 퀄컴과 한국은 이와 잇몸 사이다. 둘은 나란히 신화를 창조했다. 퀄컴이 100억달러클럽 운운하는 동안 한국기업도 세계를 제패했다. 그러나 우리가 만드는 모든 CDMA폰에 퀄컴 칩을 쓰는 판에 5∼7%에 이르는 대당 로열티까지 챙기는 것은 심하다는 비판이 엄존한다. 95년부터 올해까지 로열티만 5조원을 돌파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여기에 기술종속성 구조에 대한 거부감까지 가세한다. 퀄컴의 본원적 경쟁력은 원천기술과 국제 표준이다. 국제표준은 전 세계 규모의 정치질서와 정확히 일치한다. 약자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것은 금물이다. 로열티 조건이 한국에 상대적으로 불리하거나 홀대받는다는 정보가 흘러나오면 곧바로 퀄컴에 대한 뭇매로 이어진다. 중국과의 로열티 협상 때가 그랬다. 한국은 당시 김형오 국회 과기정통위원장이 퀄컴 CEO에게 직접 편지까지 보냈다. 해마다 수천억원의 특허료를 챙기지만 정작 우리 ETRI에 돌려 줄 ‘과자값(?)’ 수준의 로열티는 나몰라라 해서 강력한 항의도 받았다. 퀄컴은 늘 한국에는 적과 친구의 경계선을 넘나들었다.

 현실은 냉엄하다. 앞으로도 한국과 퀄컴은 동반자로 윈윈해야 한다. 둘은 유럽 및 GSM권 기업들과 맞서 있다. 한국도 퀄컴을 향한 정서적 비난을 자제할 줄 알아야 한다. 퀄컴 역시 한국에 대한 열린 자세가 필요하다. 기술은 어차피 제값 쳐서 받는다. 1800만달러를 들여 본사가 있는 샌디에이고에 퀄컴스타디움을 만들고 1500만달러를 기증해 UC샌디에이고 대학에 제이콥스스쿨 지원하는 것은 귀감이다. 그뿐인가. 샌디에이고 지역사회의 큰손으로 기부와 문화사업에 정력적이다. 한국인들은 그 사실을 가장 잘 알고 있다. 퀄컴이 한국에서도 ‘소송’이 아닌 ‘공헌’의 이미지로 남기 바란다. 찾아보면 퀄컴이 한국에서 할 일은 많다. 적의 적은 친구지만 그 대상은 언제나 뒤바뀔 수 있다.

 이 택 논설실장 etyt@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