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방송사업자가 납득할 수 있는 시행령 급해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규제 등에 관한 법률(장애인차별금지법)이 내달 11일 시행됨에 따라 방송사업자들이 전전긍긍하고 있다. 장애인의 권익향상을 위해 제정된 이 법은 지상파를 비롯해 케이블TV·위성방송·DMB 등 방송사업자로 하여금 모든 프로그램에 자막과 수화를 의무적으로 넣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문제는 이 법을 준수하기 위해선 방송사업자들의 비용 부담이 크게 늘어난다는 것이다. 실제로 방송사업자가 자막 방송 장비를 도입하려면 1억원이 들며, 프로그램 공급업자(PP)가 자막방송과 수화방송을 24시간 내보내면 연간 140억원이 들 것으로 방송통신위원회는 추정하고 있다.

 PP들이 대부분 영세한 점을 감안하면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요구하는 100억원이 넘는 새로운 시설을 갖추기란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 현실이다. 그렇지 않아도 PP들은 한미 FTA 협정으로 경쟁력 있는 글로벌 콘텐츠들이 우리 안방에 쏟아질 것에 긴장하고 있는데 새로운 난제를 만난 셈이다.

 사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6개 지상파 DMB 사업자도 마찬가지다. 이들의 연간 광고 수주액은 회사별로 평균 10억원 정도다. 그런데 이 법을 이행하는 데 드는 비용은 18억원 정도가 될 것으로 DMB사업자들은 예상하고 있다. 10억원 버는데 18억원을 써야 하는 것이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니 방송사들이 반발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애초 장애인의 인권 증진을 위해 마련된 이 법은 몇 년간의 진통 끝에 지난해 3월 가까스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하지만 이해관계가 얽히면서 아직 시행령도 만들지 못한 상태다.

 앞으로 30여일 후면 이 법은 시행된다. 방송사업자들이 이 법을 준수하기 위해 필요한 장비와 인력 등 제반 사항을 갖추기엔 시간상 너무 부족하다. 하지만 이 상태로 계속 가다간 오는 4월 11일 이후 지상파 방송을 비롯해 케이블TV·위성방송·DMB 등 모든 방송사업자가 무더기로 고소·고발당하는 사태에 직면할 수도 있다.

 상황이 이렇게 심각하지만 안타깝게도 해법은 보이지 않는다. 이런 사태를 피하기 위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정화원 의원이 각 사업자와 매체별 특성을 감안해 의무 시행과 적용방안, 그리고 유예기간 등을 대통령령으로 하자는 법률 개정안을 지난 2월 제출했지만 현재의 임시국회 일정을 보면 입법화가 거의 불가능하다.

 법률이 작년에 제정됐음에도 지난 1년 동안 별다른 대책을 세우지 않은 방송사업자들도 잘한 건 아니다. 이 문제를 앞장서 해결해야 할 방통위도 너무 늦게 대응했다는 비난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고, 시간은 계속 흐르고 있다. 가장 좋은 방법은 현실에 맞게 법을 개정하는 것이지만 이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나마 하루라도 빨리 방통위가 장애인차별금지법이 규정하고 있는 정신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사업자들도 납득할 수 있는 시행령을 만들어내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최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