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 중 다행인가. ‘행정 올스톱’ 상태였던 방송통신위원회가 틀을 갖추기 시작했다. 국회가 위원장 후보자 청문회 보고서 채택을 싸고 격돌을 벌이고 있지만 3명의 위원을 전격 추천했다. 이제 대통령이 임명하는 나머지 1명만 확정되면 곧바로 후속 조직 및 인사개편작업에 들어간다. 의외의 인선이란 평가도 나오지만 국회가 할 일은 제대로 했다.
사실 방송통신위원회 출범을 걱정한 것은 먹거리로서, 국민에게 가장 친화력 뛰어난 소비재로서의 정보통신, IT 매몰이었다. 방송 독립이란 언론적 접근법이 모든 것을 제압하는 현실을 경계한 것이다. 국민의 관심과 정책역량이 온통 한쪽으로만 쏠릴 때 산업과 시장은 설 자리를 잃는다. 실제로 위원장 내정단계부터 기우가 아니라는 점이 증명됐다. 심지어 청문회에서 조차 최시중 후보의 도덕적 검증에 ‘올인’했다. 자연히 그의 산업적 시각과 규제철학 검증은 실종됐다. 상임위원 하마평에도 정보통신 전문가는 1명이 고작이었다. 최고 의사결정기구의 특정분야 쏠림현상은 필연적으로 반발과 파행을 불러온다. 그래서 방송과 산업의 균형 및 조화 주장이 제기됐다. 4기 방송위가 아닌 방송통신위원회인만큼 지긋지긋한 당파성과 정치성에서 벗어나 달라는 요구였다.
송도균 전 SBS사장, 이병기 서울대 교수, 이경자 경희대 교수에 유력 내정자인 형태근 통신위원이 가세하는 방통위의 가장 큰 특징은 정치색보다는 전문성이 강조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과학기술, 정보통신 석학인 이병기 교수와 형 위원의 포진으로 최소한의 균형도 이루어졌다. 송 전사장과 이경자 교수 역시 정치적 색채나 코드가 뚜렷한 인물은 아니다. 오히려 방송현장과 정책개발에서 두각을 나타낸 전문가 케이스로 봐야 할 것이다. 물론 야당 주변에서는 시민단체 인사가 배제됐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하지만 방통위의 설립 취지를 되돌아본다면 이번 인선은 최선은 못 돼도 차선은 된다. 이명박정부의 조각파동을 지켜본 정치권이 정신을 좀 차린 모양새다. 지난 대선에서 확인된 시대정신은 ‘잘 먹고 잘사는 세상’이다. 빵과 일자리를 해결 못하는 ‘이념’과 ‘이론’을 심판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민주당의 이번 실용적, 개혁적 인선은 더욱 주목된다. 이병기 교수는 사회참여에도 정력적인 인물이다. 과실련 대표로서 과학과 IT의 사회가치 실현에 뛰어들었다. 이경자 교수 역시 방송개혁은 물론이고 소비자와의 접점에서 활동했던 다양한 경력을 자랑한다. 굳이 시장과 IT를 학습(?)시키지 않아도 되는 검증된 위원들이다. 위원장에 버금갈 내부 영향력이 예상되는 인물은 송 전 사장이다. 스타 언론인에서 후발 민간 방송사 경영자로 변신해 융합적 미디어 환경 변화를 체득하고 대응한 사람이다. SBS는 소비자 요구에 가장 민감하고 HD방송 등의 선행투자나 뉴미디어의 이해도가 상대적으로 높았다.
이들 앞에는 KBS2 채널의 민영화, 신문 방송 교차진입 허용등의 난제만큼이나 DMB IPTV 와이브로의 성장동력화, 통신경쟁체제, 국제 표준 전쟁 등의 숙제가 놓여 있다. 더욱이 이들에게는 여론의 검증이 기다리고 있다. 무엇이 튀어나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럼에도 방통위원 구성의 방향성은 일단 제대로 잡았다. 국회가 마지막에 한 건 했다.
이택 논설실장 etyt@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