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1만여개에 달하는 초·중·고등학교 홈페이지가 자칫 불법저작물 온상으로 전락할지 모른다는 딱한 소식이다.
지난해 개정된 저작권법은 온라인서비스제공업체(OSP)로 하여금 오는 6월 말까지 복제방지 조치를 시행하도록 하고 있는데, 1만여개 학교가 OSP로 분류돼 이 시한까지 복제방지 조치를 마련해야 하는 것이다. 문제는 1만여개에 달하는 학교가 복제장치를 취하기 위해선 디지털저작권관리(DRM)라는 제품을 설치해야 하는데 이것이 비용 등 여러 면에서 만만치 않다는 데 있다. 교과부는 DRM이 아직 기술적으로 미비한데다 이들 학교에 모두 설치하려면 막대한 예산이 들어간다면서 저작권법 주무부서인 문화부에 이의 완화를 요청해 놓은 상태다. 하지만 문화부는 이미 오래 전에 입법 예고를 했고 1년간의 유예조치를 준 상태라면서 법 시행을 강행할 방침이어서 두 기관 간 충돌도 예상된다.
교과부는 복제방지 기술인 DRM이 제품 간 서로 호환성이 없기 때문에 16개 시·도교육청 간 교육콘텐츠 교류를 위해서는 전국 1만여개 학교에 같은 회사 제품을 설치해야 하는데, 이때 한 회사에 기술·경제적으로 종속되는 것을 피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설치 이후에도 유지보수를 위해 지속적으로 비용이 들어가는 등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고 말하고 있다.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일반 OSP보다 규제 잣대가 더 엄격한 것도 교육부의 불만인 것으로 보인다. 일반 OSP는 불법적 온라인 전송 차단을 위해 ‘기술적 조치’만 취하면 되는데 정작 교육기관은 ‘복제 방지 조치’로 못을 박아 엄격히 저작권법을 적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영리와 교육이라는 점을 떠나 형평성 차원에서만 보면 교육부의 주장이 틀린 건 아니다. 개정된 저작권법을 충족하기 위해 1만여개에 달하는 학교에 DRM을 구축하려면 기술적 한계는 물론이거니와 100억원 이상 들어가는 예산도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다. 이런 면에서 교육부가 ‘복제 방지’ 대신 ‘기술적 조치’로 시행령 문구를 완화해 줄 것을 요청한 것은 충분히 이해 가는 일이다. 하지만 저작권 강국을 슬로건으로 내세우며 불법복제 방지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문화부로서도 섣불리 시행령을 완화해 줄 수 없는 노릇이다.
이의 일차적 책임은 사태가 여기까지 이르도록 별다른 방안을 마련하지 않은 교과부에 있다. 시행령에 무리가 있었다면 그 전에 무슨 조치를 취했어야 한다. 그런데 본격 시행이 몇 달 남지 않은 지금에 와서 시행령을 수정해 달라고 하면 무슨 설득력이 있겠는가.
인터넷에서 발생하는 일이 복잡하고 대형화되면서 저작권자의 권리도 강화되고 있다. 지식재산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저작자의 권리를 중요시하는 것은 옳다. 하지만 현실의 범위 안에서 이루어져야 설득력이 있다. 그런 차원에서 문화부도 교과부의 요구를 다시 한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두 기관의 처지를 떠나 개정된 저작권법의 유예기간이 끝나는 오는 6월 말까지 이 상태가 계속되면 1만여개 학교에 홈페이지에 저작물을 전송한 교사나 학생들은 자칫 범법자로 몰릴 수 있다. 이런 상황은 어떻게든 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