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영국, 그리고 유로권 중앙은행들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금융위기 수습을 위해 공적자금을 투입해 모기지 담보부 채권을 직접 매입하는 쪽으로 공조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지난 주말 이후 부쩍 높아지고 있다.
이런 관측에 불을 붙인 것은 파이낸셜 타임스 보도다. 이 신문은 지난 22일 익명의 소식통들을 인용해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와 영국 중앙은행인 뱅크 오브 잉글랜드(BOE), 그리고 유럽중앙은행(ECB)이 모기지 담보부 채권을 직접 대량 매입하는 방안을 `초기 단계`에서 협의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들 중앙은행이 그간 모기지 연계 채권 손실로 지난해 11월 이후에만도 1천250억달러 이상을 상각 처리한 금융권에 유동성을 확대 공급하는 등 간접 지원에만 나서왔으나 이것이 한계에 봉착함에 따라 `금융 건정성 위기`를 절감하고 `극약 처방`인 공적자금 투입 단계까지 이르게 됐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는 이달초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관련 손실만도 2천850억달러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이 같은 공적자금 투입 관측은 이번주부터 나오기 시작하는 월가 주요 은행들의 올 1.4분기 실적이 또다른 대규모 상각을 포함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예측으로 뒷받침되고 있다.
뉴욕 소재 펑크 지겔 앤드 코의 리처드 보브 애널리스트는 로이터에 미국 최대 리테일 은행인 뱅크 오브 아메리카(BOA)가 1.4분기중 기록적인 65억달러를 상각하는 내용의 실적을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BOA는 4.4분기의 33억1천만달러를 포함해 지난해 전체로 이미 83억9천만달러를 상각 처리한 바 있다. 이는 한 해 전에 비해 67% 증가한 규모다.
보브는 1.4분기 상각 규모가 "월가 예상치보다 다소 낮은 수준이 될 것"이라면서 BOA가 통상적으로 비즈니스 전망을 "보수적으로 처리해온 점"을 상기시켰다. 그는 그러나 추가 상각에도 불구하고 BOA가 올 1.4분기 여전히 수익을 낸 것으로 발표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로이터는 23일 `중앙은행들, 금융위기 진정 위해 새로운 플레이북이 필요할 것`이란 제목의 분석 기사에서 FRB의 잇단 금리 인하와 이례적인 중앙은행간 공조를 통한 유동성 공급 확대로는 금융시장 불안을 가라앉히는데 한계가 있다고 보도했다. 따라서 공적자금 투입을 통한 모기지 금융시장 구제가 어떤 형태로든 이뤄질 시점이라고 로이터는 전망했다.
뉴욕 소재 투자 컨설팅사 글로벌 리서치 파트너스의 폴 마르코프스키 사장은 로이터에 "일부 형태의 모기지 구제가 향후 해결책의 핵심이 될 것으로 보인다"면서 "중앙은행들도 이런 쪽으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파이낸셜 타임스 보도에 대해 FRB와 BOE측은 즉각 "공적자금 투입은 없다"는 반응을 내놨다.
BOE 대변인은 "금융 불안을 가라앉히기 위한 방안을 중앙은행들과 협의해왔다"면서 그러나 "모기지담보부채권을 직접 매입하려면 공적 자금이 투입돼야 하는데 BOE가 이런 방안을 제시하지 않았다"고 부인했다. 그러나 "다른 여러 방안들도 협의되고 있다"면서 "더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것이 시기상조"라고 덧붙였다. FRB 고위 관계자는 모기지담보부채권 매입 방안이 "(현재로선) 협의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중앙은행들의 이런 부인에도 불구하고 공적자금 투입설은 계속 확산되고 있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24일 별도의 기사들을 통해 `중앙은행과 금융 당국들이 모기지 자산을 타킷으로 할 것 같다`는 점과 `일본도 미국에 대해 공적자금 투입을 권고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유럽부흥개발은행(EBRD) 수석애널리스트를 지낸 후 런던정경대(LSE) 교수로 재직중인 빌렘 비터를 인용해 중앙은행들이 금융위기 진정을 위해 "몇달 안에 모기지담보부채권을 매입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중앙은행들이 그만큼 신용 위기로 인해 은행 건전성이 악화된 점에 경각심을 갖게 됐다는 얘기라고 덧붙였다.
파이낸설 타임스는 또 와타나베 요시미(渡邊喜美) 일본 금융행정개혁상이 "일본을 교훈삼아 미국이 공적 자금을 투입할 수 밖에없게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신문은 일본 경제 각료가 일본의 이른바 `잃어버린 10년`과 관련해 미국의 금융 위기가 일본보다 더 심각해질 수 있다고 경고한 것이 이번이 처음이라고 지적했다.
와타나베 장관은 "지금의 금융 위기를 진정시키기 위한 즉각적인 조치가 취해지지 않을 경우 더 심각한 달러 위기로 이어질 수 있음"을 경고했다.
로이터는 그러나 공적자금 투입과 관련해 중앙은행과 정부들이 우려하는 점이 `도덕적 해이`라면서 이 때문에 중앙은행들이 공조 논의의 초기 단계에서 다른 여러가지 옵션들도 함께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