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포럼]불안한 정보통신망 정책

 한국은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정보통신 산업을 일으킨 국가다. 경제 성장을 주도했던 집중력이 IT에 실리면서 누구보다도 빠른 성장세를 이루었다. 그러나 IT산업을 잘 아는 전문가는 과연 국내 IT산업이 얼마나 실속있게 진행돼 왔는지의문을 가지고 있다. 경쟁력 있는 IT항목을 제시할 때 휴대폰·LCD 등 소수 단말기 제조업과, 남들보다 앞선 초고속 통신인프라 보유 두 가지 외에는 내놓을 게 별로 없기 때문이다.

 이 중에 단말기 제조는 글자 그대로 현대판 제조업으로 쉼없는 기술 개발의 압박 속에서 부침을 반복하지만 그 부가가치를 따져 볼 때 충분히 손꼽을 만한 분야다. 문제가 되는 분야는 디지털 네트워크 인프라 산업이다. 다양한 네트워크 부가서비스 사업, 디지털 콘텐츠 사업, 특히 방송과 통신 융합, 데이터서비스 사업같이 콘텐츠가 유무선 각종 서비스 기술과 어우러져 제공되게 될 미래의 각종 네트워크 서비스 준비 상황이 기술·법·산업·정책 어느 면에서도 부족한 게 우리의 현실이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네트워크와 관련 산업정책을 보면 허술하기 짝이 없다. 소비자는 대부분의 필요보다 과다한 대역을 위해 비싼 대가를 치르며 망 또는 망사업자도 KT를 비롯한 망 소유 기업의 눈치를 보며 사업을 누리고 있다. 이를 입증하듯 이른바 차상위 계위 망 사업자는 이미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한 지 오래다.

 콘텐츠 사업자 또한 망 소유 대기업과 관계에서 문제가 생기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한 임무로 떠올랐다. 따라서 초기 세계적으로 앞서 있던 동영상 등 일부 멀티미디어 콘텐츠 산업도 이미 성장세가 둔화한 상태며 새로운 서비스도 구경조차 어렵다. 방통 융합도 국가의 장기 전략보다는 이권 확보와 주도권 다툼 속에 추진하다 보니 한없이 세월만 보내고 있다. 이제 겨우 법을 통과시킨 IPTV는 창피하게도 우리보다 먼저 시작한 나라가 서른 곳도 훌쩍 넘어버렸다. DMB·와이브로 등을 통한 기술표준 수출도 언론에만 요란할 뿐 범국제적 확산이나 실속 있게 진출했다는 증거는 찾기 어렵다.

 정통부 해체로 구심점마저 잃은 망 유관 업계는 이제 KT와 같은 망 소유 기업의 지배력이 유선과 무선에서 방송 등 다른 산업으로 뻗으면서 자신의 망을 배타적으로 활용하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꼴이다.

 지금 시점에서는 적어도 십년을 바라보는 제대로 된 네트워크 정책이 필요하다. 정부가 소수 대기업, 기타 기업을 몇 번 만나고 여기서 만들어진 주제를 가지고 연구과제를 거쳐 정책을 구사하는 구태의연한 접근법에 종지부를 찍을 때가 됐다. 이제는 유관 부처와 기업, 단체와 사용자까지를 포함하는 팀이 만들어져 과학적 분석을 통한 접근법과 이에 따른 방향과 전략을 만들어야 한다. 네트워크 정책이 아닌 국가적 네트워크 전략이 필요하다. 특히 네트워크는 소수 기업의 독과점 형태로 만들어져 시장의 효율적 역할이 어려운 상황이다. BCN과 같은 차세대 망이 점차 새로운 영역을 넓혀가고 이에 맞춘 IPTV와 같은 차세대 서비스도 곧 늘어날 전망이다. 지금과 같이 기준과 질서가 불확실한 네트워크 정책 속에서는 관련 산업 활성화를 기대하기 힘들다.

 망 중립성 문제를 예로 들어 보자. 기업 경영에서 예측 불가능성은 위험요소다. 네트워크란 콘텐츠를 운반하는 도로와 같다. 산업 활성화를 위해 도로를 많이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통행이 임의로 불가능하다든지, 통행료가 그때그때 달라진다면 물류 문제로 산업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정보통신 네트워크에서 이를 해결하고자 하는 망 중립성 문제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다. 조만간 무선 망 개방에 있어 유사한 문제가 생겨 더욱 복잡해질 것이 자명하다. 망 사용 시장이 제대로 활성화되지 못하면 결국 망 소유 기업도 위축된다.

 미국 대통령 후보인 오바마도 선거공약의 앞줄에 망 중립 문제 해결을 내놓았다. FTA 협상에서도 망 중립성 기준을 미리 갖추지 않으면 그들의 기준대로 따라가기 쉽다. 디지털 네트워크 정책은 중요도가 매우 높은 범국가 차원의 전략적 영역이다. 이제는 정보 방송통신망이라 불러야 할 디지털 네트워크에 대한 치밀한 기획이 정말 중요한 때다.

 한국외국어대 경영정보학과 김병초 교수 bckim@huf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