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HTML코더의 진화

 처음 컴퓨터 업계에 발 디뎠을 때 얘기다. 프로그래머라는 직업군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에 한껏 들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선임 프로그래머가 한마디 툭 던졌다.

 “넌, 코더야. 프로그래머는 시스템 분석·설계를 하는 사람이고, 넌 기계가 알아먹도록 그걸 컴퓨터말로 바꿔주는 것뿐이야.” 이 말에 자존심이 무너졌다.

 디자이너는 창조성을 외치며 예술가처럼 폼을 잡고 프로그래머는 개발자라고 전문가 행세를 하는 상황에서, HTML로 코딩하는 사람은 코더라는 이름 아래 창의적이거나 전문적이지 않은 단순업무 영역으로 분류됐다.

 게다가 디자이너가 작업 일정을 지연시키면, 그 부담으로 인한 야근과 철야는 코더 몫이 됐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컴퓨터 생태계에 변화가 찾아왔다. 윈도가 인터넷익스플로러와 함께 독점하던 시장에 리눅스라는 경쟁자가 생겼고, 넷스케이프 내비게이터(NN)를 이어 받은 파이어폭스·오페라·사파리 등의 브라우저가 등장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크로스 플랫폼, 크로스 브라우징의 요구가 자연스레 대두됐다. 여기에 휴대폰·PMP·IPTV 등 과거에는 인터넷과 무관했던 기기들이 속속 인터넷 세상에 합류하기 시작했다.

 이런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웹 표준의 필요성이 절실해졌고, 그동안 표준으로서의 위치가 불안정했던 웹표준이 XHTML과 CSS를 바탕으로 개념이 정립되기 시작했다.

 이에 맞춰 기존 코더가 해온 것과는 상당히 다른 새로운 개발방법론이 탄생했고, 이들에게는 깊이 있는 전문적 지식이 요구됐다. 이때쯤 웹 표준 확산을 주도하는 국내 웹 표준 전도사들은 과거의 코더와는 업무영역이 달라졌음을 구분하기 위해 상징적인 의미로 ‘웹퍼블리셔’라는 신조어를 사용하게 된다.

 지금은 웹 표준의 필요성에 일찍 눈을 뜬 대형 포털과 공공부문, 웹에이전시 등 웹 관련 업계 모두가 웹퍼블리셔를 필요로 하고 있다. HTML 코더를 하다 레벨업한 일부 웹퍼블리셔를 제외하고는 시장 전반적으로 희소가치가 높은데다 아직 교육기관에서조차 웹표준 전문과정의 배출이 미약하다. 이런 이유로 웹퍼블리셔 인력 시장에 수요와 공급의 부조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에 따라 웹퍼블리셔의 위상과 처우는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바뀌어 가고 있다. 이 점에 있어 국내 웹 표준 전도사 그룹에게 경의를 표한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기회는 위기와 더불어 오는 법. 얼마나 앞서 준비해왔는지에 따라 개인과 기업 모두에게 위기가 되기도 하고, 기회가 되기도 할 것이다.

윤병찬 클라우드나인 퍼블리싱팀장 evergrin@cloud9.co.kr